VIX(Volatility Index)는 증시의 위험성을 나타내는 지수이다. 이른바 증시의 ‘공포지수’로 S&P 지수 옵션가격의 향후 30일 동안의 변동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보여준다. 보통 증시 지수가 좋으면 VIX는 떨어지고 반대로 나쁘면 올라간다.
통상적으로 VIX가 30정도면 공포 수준이 높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투매현상이 세계 증시를 휩쓴 8일 미국 증시의 VIX는 48까지 치솟았다. 다른 지역 증시의 ‘공포지수’ 역시 급등했다. 9일 약간 완화되기는 했지만 세계 증시는 전면적인 공포에 질식돼 있는 상태다.
지난 수년간 증폭돼 온 증시에 대한 불안감은 새로운 투자 풍속도를 만들어 냈다.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오히려 돈을 버는, 이른바 ‘블랙스완 펀드’에 대한 투자가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이것을 ‘하늘이 무너지는 데 돈을 거는 것’이라고 폄하하지만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더라도 그것과 비슷한 상황은 얼마든 일어날 수 있음을 지난 몇 년간 금융시장은 실증해 주었다.
‘블랙스완’은 검은 백조이다. 백조하면 당연히 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모든 백조를 다 보지 못한 이상 백조는 예외 없이 희다고 결코 단언할 수 없다. 블랙스완은 금융시장에서 발생하는 상상치 못한 사건을 뜻한다.
블랙스완을 하나의 개념으로 정리하고 이것을 실제 투자에 응용해 막대한 돈을 번 인물이 레바논계 미국인 나심 탈레브이다. 대부분의 펀드들이 위험회피 수단을 마련하지 않은 채 한 방향으로 돈을 걸 때 탈레브는 옵션 매수를 통해 오히려 위험에 돈을 거는 헤지펀드인 ‘임피리카 펀드’를 만들었다. 금융 위기 때 다른 펀드들은 나자빠졌지만 임피리카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금융위기 후 블랙스완 펀드에 많은 돈과 관심이 몰린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장이 좋을 때는 찔끔찔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블랙스완 펀드가 손실에 민감한 보통 사람들의 성향에 잘 부합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탈레브는 이렇게 비유한다. “10년간 피아노를 연습하고도 동요 하나 치지 못하는 절박함을 이해하는가.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이것을 지탱시켜 주는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스완 펀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투자방식이 아니다.
증시 폭락은 거의 모든 투자가들에게 처참한 출혈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이 소수의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행운과 돈이 되기도 하는 잔혹한 현실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미래 예측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증시를 물리적 통계모형으로 분석하고 예측하려는 무수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정확성은 형편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기예측은 고사하고 단기예측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한국의 증시가 패닉에 빠져 폭락을 거듭하자 불과 며칠 전까지 장밋빛 하반기 전망을 쏟아냈던 증권사들은 고객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느라 정신없는 모습들이다. 자신들의 예측이 철저하게 빗나갔음을 시인하고 수정된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뒷북이 맞을지 또한 두고 봐야 한다.
이제 증시에서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없다”는 사
실뿐이다. 투자가들은 통계적인 질서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이들은 수시로 마음을 바꾸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휩쓸린다. 무질서는 순식간에 공황상태를 초래한다. 불확실성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탈레브는 좀 더 일찍, 냉정히 깨달았을 뿐이다.
탈레브는 역발상 투자로 큰 성공을 거두고 수십억달러를 굴리게 됐지만 “여전히 나는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진심어린 고백으로 받아들여야 할 근거들이 매일 매일 증시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가. 과거에 발생한 일들로부터 어떤 규칙을 찾아냈다고 해서 그것이 계속 유효할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무수한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증시를 연구하고 분석했지만 인간의 공포와 군중심리, 그리고 불합리한 마음으로 뒤얽혀 있는 그곳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여전히 보잘 것 없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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