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공부도 잘 하고/ 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세 시간 동안 가스불 앞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
<문정희,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중에서>
식사 후 남편은 거실로 가서 신문을 집어 들거나 TV를 보고, ‘여학생’은 뒷설거지를 하고 아마도 과일을 깎고 … 어느 집에서나 익숙한 저녁 풍경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가족들이 화목하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완벽한 가정의 모습이 된다. 여자의 행복으로 정의되는 그림이다.
그런데 주부들이 그렇게 쓸고 닦고 식구들 시중들며 20년, 30년 살다보면 어느 날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뭔가가 허전한 것이다. 부모님 사랑 독차지하고, 공부도 특별활동도 잘 하고, 남학생들 앞에서 도도하던 본래의 ‘나’ 그 ‘여학생’이 실종된 것이다.
내 입맛 대신 남편 입맛, 나 좋은 것 대신 아이들 좋아하는 것 위주로, 남편이 맛있다면 기쁘고, 아이들이 좋아하면 행복해하며 1년 365일 살다보면 의식의 진화가 일어난다. ‘여학생’은 자취를 감추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아
내’와 아이들 보살피는 ‘엄마’만 남는 것이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내 인생에 내가 없는 것 - 대부분의 중년여성들이 느끼는 쓸쓸함이다.
주부들의 이런 공허함을 처음으로 지적한 것은 1963년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였다. 여자의 행복을 ‘현모양처’에 준해 정의하던 전통적 해석에 도전하며 여권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그로부터 반백년이 지나도 한국 주부들의 삶의 구도는 여전하다.
요즘 그 여성들이 단체로 잃어버린 ‘여학생’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것이 영화 ‘써니’이다.
제작비 별로 안들이고 큰 성공 기대하지 않고 만든 이 영화가 지금 한국에서 대단한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남가주에서도 2주 전부터 상영되기 시작해 여성들이 동창끼리, 친구끼리 ‘꼭 같이 볼 영화’로 꼽고 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여고시절 ‘써니’라는 그룹이름으로 같이 몰려다녔던 7명의 친구가 제각기 흩어져 소식도 모른 채 살다가 25년 만에 다시 만난다는 설정이다. 고등학교 때 삶과 중년여성으로서 현재의 삶이 교차되면서,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여고시절을 되돌아보고, 그 장면을 보는 관객들은 그 자신의 ‘여학생’을 되돌아보며 영화와 관객은 하나가 된다.
나이 듦이란 한마디로 무대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나이 들면 구석으로 밀려난다. 노래도, 영화도, 패션도 그 시대의 ‘주인공’인 젊은 세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인데 최근 중년층을 겨냥한 프로그램들이 시도돼 의외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 가을 나온 ‘세시봉 콘서트’가 대표적이고 영화 ‘써니’도 이 부류에 속한다.
제작진도 예상 못한 흥행성공에는 무대 밖으로 밀려난 중년층의 소외감 혹은 쓸쓸함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주인공이었던 시절의 가수와 노래, 영상은 머리 희끗하고 은퇴가 코앞인 중년들을 순식간에 젊고 싱그러운 청년들로 되돌리고, 그 감동이 시장성으로 연결되었다. 추억의 힘이다.
여성들이 주인공인 ‘써니’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여성이 주부로 살아가면서 잃어버리는 것은 ‘젊음’만이 아니다. ‘나’라는 정체성도 함께 잃어버린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그들의 성공과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것은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종종 ‘나 자신’이 사라져 버린다.
영화에서 주인공 나미는 말한다. “너무 오래 집사람과 엄마로 살아왔어”, 그런데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옛일을 추억하다 보니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라는 말이다.
여성 관객들은 특히 이 대사에 감동하고, 입 소문에 관객이 몰린다.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결혼한 60대 주부가 이런 말을 했다.
“결혼하고 나니 남편 뒷바라지가 먼저라서 내 공부, 내 진로는 접었어요. 그러다 아이들 태어나 아이들 키우고, 남편이 자리 잡아서 경제적으로 안정 되니 새삼스럽게 내 일을 하겠다고 나설 수가 없더군요.
‘결국 이렇게 늙고 마는 구나’하고 가끔 허탈해져요”
지금 중년이면 요즈음 수명으로 적어도 30~40년은 더 산다. 앞날이 창창하다. 주부들이 ‘내 인생의 주인공’ 자리를 되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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