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회 저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잡아내는데 ‘구글 트렌드’는 족집게다. 구글에 어떤 단어들을 검색하는지를 통해 미국인들의 생각과 변화를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 몇 년 전 미 전역에 플루가 기승을 부렸을 때 구글은 지역별 검색현황을 통해 이 질병이 어느 곳에서 특히 만연하고 있는지 곧바로 잡아냈다. 몇 달 후 질병통제 당국이 발표한 공식통계는 구글 트렌드의 정확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점차 많은 미국인들이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다. 그 증거 역시 구글 트렌드이다. 10여년 전 닷컴 버블 때 구글에서 가장 빈번한 검색어였던 ‘투자’와 ‘주식투자’는 최근 수년 동안 검색순위가 급속히 하락했다. ‘투자’는 월 80여만건, ‘주식투자’는 6만여건이다.
반면 투자관련 검색어 가운데 단연 1위는 ‘저축’이다. 월 600만건이 넘을 정도다. 재테크와 관련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주식에서 저축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금융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주식시장이 다시 안정을 찾은 후에도 이런 트렌드는 그대로다. 주식시장에서 호된 경험들을 한 탓이다.
구글 트렌드에 나타난 추세는 설문조사에서도 똑같이 확인된다. CNBC가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금융위기 전보다 더 많이 저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60% 가까이가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으며 44%는 더 이상 주식에 돈을 넣지 않겠다고 했다. ‘저축’이라는 단어의 검색이 왜 폭발적으로 늘었는지 설명이 된다.
‘개미’로 지칭되는 소액 개인투자가들은 주식시장에서 재미를 보기 힘들다. 정보력과 시스템에서 전문 투자가들과 기관 투자가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들의 심리적 경향과 관련이 있다.
최신 경제학에서 개인들의 경제적 행위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은 손실과 이익에 대한 엇갈리는 태도이다. 가령 확실하게 800달러를 벌 수 있는 상황과, 1,000달러를 벌 가능성은 85%지만 전혀 벌지 못할 가능성이 15% 있는 경우를 놓고 고르라면 대개는 800달러를 고른다. 이익을 얻는 상황에서는 더 많은 이익에 대한 불확실성보다는 적지만 확실한 이익을 택한다.
하지만 손해상황에서는 다른 태도가 나타난다. 확실하게 800달러를 잃는 경우와, 1,000달러를 잃을 가능성은 85%지만 하나도 잃지 않은 확률도 15% 있는 상황 가운데 고르라면 보통 후자를 선택한다. 이익을 따질 때는 확실한 것을 택하면서 위험부담을 피하지만 손해의 경우에는 확실한 것을 피하고 위험부담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미들의 이런 경향은 주식시장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주가가 떨어져 팔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위험부담을 택해 팔기를 미루고 반대로 주가가 오를 때는 확실한 것을 챙기겠다며 성급히 팔아 치운다. 주식에서 고수인지를 가려주는 것은 손해를 보고 파는 ‘손절매’를 얼마나 잘 하느냐이다. 기관투자가들은 시스템으로 손절매를 한다. 개미들은 대부분 이런 판단과 절제가 부족하다. 간혹 돈을 버는 개미들이 있지만 그것은 불과 몇퍼센트의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주식시장에는 “밀물은 모든 배를 밀어 올린다”는 격언이 있다. 시황이 좋으면 투자 실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수익을 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밀물일 수는 없는 법. 밀물 덕으로 봤던 한 때의 재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저축 증가는 개미들이 주식시장의 휘발성과 불안정성에 뜨겁게 데인데 따른 반작용이다. 여기에는 경제적 판단과 함께 가치관의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 많은 미국인들 사이에 좀 덜 벌고 덜 쓰면 된다는 깨달음이 확산돼 왔다.
주식을 금융시대의 재테크라고 한다면 저축은 산업화 시대의 냄새가 강하다. 요즘 복고가 유행이라는데 재테크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금융상담 전문가들은 “저축을 시작하면 재정부문의 예측 가능성이 커지면서 생활 전반에 안정성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뚜벅이처럼 단순하고 우직한 재테크 방식인 저축은 이처럼 이자율로만 따질 수 없는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누구보다 투자와 소비에 공격적이었던 미국인들이 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변화가 얼마나 갈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한동안은 지속될 것 같다. 주식시장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이 아직 생생한 데다 정치판의 해묵은 싸움으로 알량한 사회보장마저 크게 흔들리고 있으니 말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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