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정보와 접근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현실에서 북한 경제의 실체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경제에 관한 통계치의 신뢰도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를 포함한 여러 국가 및 기관에서는 꾸준히 북한경제에 관한 다양한 통계자료를 작성하고 이를 위한 정보수집 및 분석, 관련연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북한 경제의 현실은 한국정부의 통계자료, 북한거주 주민· 탈북자· 방문자들의 진술, 언론 보도, 외국정부 및 기관들의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하여 연구되고 있다.
문제는 북한경제의 미시적 부분에 대한 추정은 과학적 엄밀성과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지만 경제전반을 조망할 수 없다는 한계이다. 예를 들어 특정 북한 기업소의 현황을 파악하고 분석을 한다하더라도 북한경제의 전반적인 현황을 알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필자는 최근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북한경제를 보다 거시적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추정해 보는 작업을 시도해 본 바 있다. 이를 위해 북한경제의 현황을 잘 반영하는 식량작물 생산량, 조강 생산량, 석탄 생산량, 전기 생산량, 수산물 어획량, 도로 길이, 원유 도입량, 무역총액, 국가재정 총액, 한국의 대북 지원액 등 10개 주요 지표를 선정하였다.
분석의 초점은 각 경제지표가 김정일 집권 첫해이자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1995년을 기준으로 2009년까지 얼마나 변화하였는가를 산출해 내는 것이다.
지수추정을 통해 대략 다음과 같은 잠정적 결론을 얻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북한 경제는 김정일이 집권한 첫해에 비해 2009년 말 현재 86.5에 불과해 김정일이 통치한 15년 동안 북한 경제가 14% 정도 후퇴했다. 북한 경제현실이 김일성 시대보다 훨씬 뒤쳐졌다는 점이 사실로 드러났다.
오죽하면 김정은이 지난해 12월초 평양에서 개최된 한 회의에서 “3년 내 북한 경제를 1960∼1970년대 수준으로 회복시켜” 김일성이 주민들에게 내걸었던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사는 생활수준을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을까.
북한의 경제상황은 1995년 지수 100을 기준으로 평가해 보면 고난의 행군시절이었던 1998년도에70.3을 기록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경제성과가 가장 높았던 해는 지수가 104.7로 추정된 2007년인데, 이때는 중국과의 교역증가와 한국의 대북지원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북한 계획경제의 핵심인 철강과 전기 생산량은 큰 변화가 없어 경제관련 지수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도 북한경제는 무역총액의 감소와 한국지원액 등의 감소로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것으로 나타난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재정규모는 2002년부터 급속히 감소하였다. 1994년과 2004년을 대비해 보면 북한의 재정규모는 약 1/8로 감소하였다. 현재 재정의 공백은 시장이 메우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북한주민들의 시장 활동은 자료 부족으로 통계추정에서 배제하였지만, 시장 활동 규모가 추가될 경우 북한의 경제지수는 다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일반주민들에게 장마당에서의 상업 활동은 보조 경제수단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가장 중요한 경제활동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국가의 책무와 기능이 약화되면서 북한주민들은 독자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고, 점차 국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이제 북한에서는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시장의 확산과 계획경제의 충돌이 증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당분간은 계획과 시장이 어색하게 상호 모순된 두 정책이 혼재된 형태로 공존하겠지만, 결국에는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계획경제는 이미 추동력을 상실하여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반면 시장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계속 확장되고 있고 당 간부를 포함한 모든 주민들의 생활의 한부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암담한 북한경제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우선 개방을 시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북한이 전면적 개방정책을 실시하더라도 경제성장의 동력을 제공하기에는 이미 때늦은 감이 있다.
북한처럼 정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사회에서 국가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인 독재체재와 3대 세습이 없어지지 않는 한 정상적인 경제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소유권 인정과 같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본질적이면서도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의 국가 경쟁력 확대나 생산의 획기적 증대도 기대하기 어렵다.
양운철
한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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