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청소년 대상 국제 과학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올해 처음 열린 대회에 전 세계 91개국에서 중고교생 1만 여명이 출전해 경쟁이 치열했다. 저마다 ‘과학영재’인 이 학생들 중 60명이 예선을 통과했고 거기서 다시 15명이 본선 진출자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지난 주 실리콘 밸리의 구글 본사에서 최종 심사를 거쳐 세 명의 우승자가 뽑혔는데, 세 명 모두 여학생인 것이 싱싱한 화제가 되었다. 17-18세, 15-16세, 13-14세로 나뉜 세 그룹에서 텍사스, 오리건, 펜실베니아 등 모두 미국의 여학생들이 우승을 차지했다.
‘과학’ 하면 당연히 ‘남자 분야’로 여겨지는 통념 혹은 현실 속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는, 자신감 넘치는 소녀들의 모습은 과학계에, 여성계에, 그리고 대회를 주최한 구글에도 기분 좋은 충격이 되었다. 이런 결과에 대해 한 심사위원은 (과학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과 같거나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일례라고 말했다.
연령별 우승과 함께 대회 최고우승자가 된 한 17세 소녀 쉬리 보즈 역시 “개인적으로 놀라워요. 과학은 남자들의 분야라는 말을 평생 들어왔거든요”라며 즐거워했다. 쉬리는 난소암 치료 화학요법에 쓰는 시스플래틴이라는 약이 왜 나중에는 효력이 떨어지는 지 그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냈다. 그 결과 소녀 과학자는 5만 달러의 대학 장학금, 10일 간 갈라파고스 제도 탐험, 스위스의 소립자물리학 연구소 방문 등을 상으로 받았다.
20세기 여권운동 이후,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독무대였던 많은 분야에 여성들이 잠식해 들어갔지만 유독 여성의 진출이 더딘 곳이 있다. 바로 이공계, 소위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분야이다. 이와 관련해 으레 “여자아이들은 본래 수학을 싫어해서” “여자는 언어능력이 더 낫고, 남자는 공간이해력이 더 나아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남성과 여성의 뇌 구조가 다르다는 말인데 이런 ‘다름’은 종종 ‘여성의 열등’으로 풀이되곤 했다. 지난 2005년 로렌스 서머스 당시 하버드 총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한 컨퍼런스에서 그는 이공계의 경우 명문대학 종신 교수직등 최정상에 오른 여성이 드문 이유로 수학·과학에서 남성과 여성의 타고난 재능 차이를 한 요인으로 지적했다. 고도의 경지로 들어가면 능력이 조금만 떨어져도 엄청난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인데, 그 파문이 엄청났다.
하버드의 여교수들을 물론 평소 그의 독단적 리더십에 불만이 있던 교수·동문들이 모두 반기를 들었고, 그 여파로 결국 그는 다음해 총장직을 사임했다.
여자아이들이 수학·과학을 싫어한다는 건 사실일까?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적성과 능력이 다르듯이 남녀 성별에 따른 차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것은 ‘환경’이다. 교육에 있어서 불평등했던 환경이다.
서구의 교육 전통은 원래 성직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정식 교육과정에서 소외되면서 특히 접할 수 없는 것이 수학이나 물리 등 과학 분야 지식이다. 여성이 이공 분야와는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수학이나 과학은 남자들 분야’라는 인식이 뿌리 내리게 된 배경이다. 요즘 같은 인터넷시대에는 아무리 석학이라도 컴퓨터를 모르면 ‘바보’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여성에 대한 가혹한 악습으로 중국의 전족이 꼽힌다. 여아의 발을 천으로 꽁꽁 묶어 성인이 되어도 발이 10센티 정도 되게 만들던 가혹한 풍습이다. 단순히 묶는 게 아니라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 모두를 발바닥에 붙도록 구부려 뜨려 사슴 발처럼 작고 뾰족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런 발을 요염함의 극치로 여기던 남성들의 성적 환상의 산물이었다.
20세기 전반까지 천년이나 지속된 전족은 여성을 철저하게 남성의 종속물로 만들었다. 제대로 걸을 수도 일할 수도 없는 조건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기대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 남녀가 평등한 존재라는 인식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남존여비 사상은 깊어지고 여성의 지위는 날로 추락했다.
법적 제도적으로 남녀 불평등이 사라진 지금, 마지막 남은 것은 아마도 우리 의식 속의 장벽일 것이다. 의식의 ‘전족’이다. 여자라서 해야 되고, 해서는 안 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 구글 경연대회의 결과는 그런 맥락에서 반갑다. “여자가 어떻게 …”라는 의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소녀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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