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작은 마을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는 소식에 모두가 기뻐했다. 시간이 지나고 흥분이 점차 가라앉으면서 대회준비라는 현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평창 앞에는 세계인들의 뇌리에 오래 기억될만한 올림픽을 알차게 치러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놓여 있다.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경제적인 후유증을 앓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올림픽의 저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지금 같은 형태의 재정구조를 갖춘 최초의 대회로 평가되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얼 올림픽은 우리에게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정작 몬트리얼 주민들에게는 나쁜 기억이 되고 있다. 대회를 치르기 위해 진 빚을 수십년 동안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이 돼서야 가까스로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일본의 나가노 역시 포스트올림픽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최적의 동계올림픽 개최지라는 호평을 받았음에도 투자와 수익의 균형을 맞추지 못함으로써 지금까지 헉헉대고 있다. 이 두 올림픽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거의 모든 올림픽이 그랬다. 그리스의 현 경제위기에는 아테네 올림픽도 한몫 했다.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수십조원의 경제효과가 기대된다는 등 근거가 불분명한 장밋빛 전망들이 난무한다. 그동안 메가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이런 전망들이 쏟아졌지만 실제로 확인된 경우는 별로 없다. 국민들을 들뜨게 하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냉정하게 대회를 준비하고 치르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축학에서는 가장 경제성이 낮은 건물로 대형 스포츠 시설들을 꼽는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음에도 투자 대비 효용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구조물들은 ‘하얀 코끼리’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으로 불린다. 한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과욕으로 전남 영암에 지어진 F1 자동차 경주코스가 대표적이다. 대회를 한번 치른 후 이 ‘하얀 코끼리’는 막대한 관리비만 먹어 치우고 있다.
역대 올림픽 가운데 상업적으로 성공한 몇 개 안되는 대회가 1984년 LA 하계 올림픽과 1992년 노르웨이 릴리하머 동계올림픽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최소화 했다는 점이다. 기존 시설이 풍부하다는 이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신축의 경우 돈을 거의 들이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릴리하머의 경우 필요건물을 상당수 가건물로 지어 대회 후 바로 철거했다.
또 성공한 올림픽들은 철저하게 민간주도로 치러졌다. 올림픽은 도시행사임에
도 대부분 국가가 개입한다. 그런데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다 보면 판은 저절로 커지고 자연히 지출통제가 힘들어지게 된다. 국가의 자존심과 과시욕이 작용하는 까닭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그랬다.
평창이 ‘올림픽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몇 가지 함정을 피해가야 한다. 무엇보다 화려하게 치름으로써 우리의 면면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외국 손님들과 언론을 너무 의식해 감당하기 힘든 출혈을 하면서 대회를 치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큰 국제행사를 치렀던 그동안의 전례들과 유독 외국인들의 시선에 민감한 우리의 정서로 볼 때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20년간 하계와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도시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몇 개 도시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대개는 그때뿐이다. 빚을 내 벌이는 잔치의 짜릿함은 잠깐이지만 그것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길다. 개최지라는 사실이 잊혀진 후에도 오랫동안 빚 감당을 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면 화려함보다 내실을 추구하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
미 공화당 대선주자로 솔트레익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미트 롬니는 “올림픽을 개최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평화 메시지로서의 의미가 있을 뿐 경제적 이익을 바라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경제효과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칫 제살 깎아먹기가 되기 때문이다. 평창이 깊이 새겨들어야 대목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올림픽 역사로부터 예외가 되려면 예외적인 노력과 발상이 요구된다. 지난 몇 년간 ‘실용주의’라는 어휘가 난무하다 언젠가부터 땅 속 두더지처럼 쑥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이 구호를 제대로 꺼내 들어야 할 일이 정말 생겼다. 올림픽 준비가 그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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