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재앙인가 축복인가’- 3년 전 베이징올림픽이 열렸을 때 일부에서 던져진 질문이다.
막대한 재정을 들여 올림픽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뒤따라 온 것은 경제난이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의 경우다. 반정부 시위가 계속된다. 결국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올림픽은 개막됐다. 그리고 10여년 후 멕시코는 경제적 파탄을 맞는다.
경제적 재앙 정도가 아니다. 올림픽은 때로 한 체제의 붕괴를 불러 오기도 한다. 니치 독일의 경우가 그렇다. 체제 선전장으로 나치 독일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적극 활용했다. 그리고 만 10년 후 나치체제는 패망했다.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린 해는 1980년이다. 그 후 꼭 10년 만에 소련은 붕괴된다. 여기서 하나의 공식이 성립된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전체주의 독재체제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면 그 체제는 얼마 안 가 무너진다는 일종의 ‘징크스성’ 공식이다.
왜. ‘나비효과’가 그 한 설명이다. 나비가 날개 짓을 한다. 그 미묘한 공기의 움직임은 거의 느끼지 못한다. 25일 동안 변화가 없어 보인다. 그 변화가 갑자기 감지되는 것은 26일 째부터다. 그리고 30일이 됐을 때 나비의 날개 짓은 거대한 토네이도를 몰고 오는 것이다.
한숨이, 눈물이 쌓인다. 분노가 소리 없이 번진다. 그러나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상황은 돌연히 임계점에 이르렀다. 마침 개최된 올림픽이 그 촉진제가 된 것이다. 체제에 억눌려온 사람들이 인류의 제전을 통해 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독재체제는 진실이 알려질 때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 체제에 한번 균열이 일면 상당히 급속도로 붕괴된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가 한 말이다.
베이징올림픽 이후의 중국은 그러면. 체제유지에 상당한 피로감을 보이고 있다. 연 18만 건이 넘는 각종 시위가 바로 그 증좌다. 그런 중국공산당의 오늘을 응시하면서 적지 않은 관측통들은 2018년이란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이 치러진지 10년이 되는 그 해를.
올림픽은 재앙이 아니다. 축복이다. 특히 민주주의 배당금으로 주어졌을 때에는. 그 대표적 케이스가 서울올림픽이다.
88서울올림픽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각종 경제지표는 수직에 가까운 상승세를 보였다. 한국의 안보환경에도 엄청난 변화가 왔다. 동구권과의 수교가 이루어진 결과다. 한국의 민주주의 배당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30년 후 한국은 또 한 차례의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600억 달러가 훨씬 넘는 경제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 브랜드가치가 한 차원 높아질 것이다 등등.
관련해 새삼 관심을 끄는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가 내세운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이란 슬로건이다.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를 유치할 때 그동안 한국은 ‘분단’과 ‘평화’를 앞세운 감동전략을 구사해왔다. 말하자면 일종의 읍소(泣訴)전략이다. 그 전략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순수 스포츠를 통해 상생을 추구하는 ‘새로운 지평’이라는 주제다. 그것이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들을 움직였다.
무엇을 말하나. 냉전시대의 분단국가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한국이 나눔과 상생, 자유와 도전의 정신을 제창했다. 새로운 시대정신이랄까. 인류 보편의 이데올로기라고 할까. 그런 걸 제시한 것이다. 그 성장한 한국에, 한국 국민에 갈채를 보낸 것이다.
이는 동시에 시대가 달라지고 있고, 또 한반도를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연아로 상징되는 한국, 한류(韓流)의 나라 대한민국만 보일뿐 그 너머에 있는 북한이란 존재는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세계인의 시각으로 볼 때 한반도 통일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여 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통일 말이다.
사실이지 한반도는 더 이상 분단관리가 가능한 시대에 있지 않다. 게다가 이미 북한 체제위기의 시대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또 심화되고 있다. 한반도의 ‘스테이터스 쿠오’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로 오는 것은 그러면 무엇일까.
‘평창에의 선택’은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온다는 것을 부지부식 간에 예언한 것
으로 들리는 것이다.
이래저래 기다려지는 것이 2018년이다. 한반도 남쪽에서 시작된 나비의 날개 짓은 한류를 타고 이미 거대한 태풍으로 변했다. 그런 마당에 한국은 또 한 차례 세계무대의 한 가운데 서게 되는 것이다.
그 해는 그리고 베이징올림픽이 치러진지 10년이 되는 해다. 어떤 거대한 변화가 한반도에,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에 몰아칠지 왠지 기대가 되어서다.
옥세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