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한인교회의 수가 4,10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가 너무 많다는 말도 들린다. 사실 미주 한인사회에는 교회를 비롯해서 각종 단체들이 많이 있다. 한인회,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 업종별 협회, 경제단체, 향군 동지회, 노인회, 각종 봉사회, 상조회, 동호회, 여성회, 친목단체, 종교단체, 학술단체, 장학회 그리고 무슨 무슨 모임, 아무개 후원회, 등등 …
이런 단체들은 모두 회원들의 권익을 증진하고 친목을 도모하면서 나아가 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하는 등 훌륭한 목적과 동기를 가진 단체들이니까 많을수록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한인사회에 단체가 ‘너무’ 많다고 한다면 이들 단체가 본래의 순기능을 떠나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폐단과 부작용을 일으키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미국 내 교회를 제외한 한인단체의 숫자는 3,000개가 조금 넘는다는 통계가 있는데 짐작컨대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 같다. 우선 동창회만 해도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대학원 동창회에 이르기까지 1,000 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숫자에는 같은 학교 동창회라도 각 지역마다 있는 지부나 지회들도 포함된 것인지 모르겠다. 주말 한국학교도 1,000 개에 이르고, 각 지역의 한인회만도 220 개나 된다. 이렇게 숫자를 들먹이다 보면 과연 단체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원래 공동체주의에 잘 길들여져 있는 한인들은 가까운 사람끼리 ‘어울려’ 서로 돕고 사는 전통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 반면에는 ‘끼리끼리 해 먹는다” 거나 “패거리 문화” 같이 배타적, 폐쇄적, 그리고 병폐적인 연줄 의식도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 많은 단체들 중에는 본래의 목적대로 활동하지 않는 단체들도 있다는 것이다. 단체를 만들고 이끄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동기나 개인적인 목적에 따라 단체를 운영하기도 하고, 단체의 명의를 이민이나 영주권 취득의 편법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또 단순히 단체장이나 임원이라는 감투를 쓰기 위해 단체가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단체들이 많다거나 딴 짓을 한다거나 간판만 걸어놓고 있다는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그런 단체들이 싫으면 가입하지 말고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그러나 동포들의 복지와 동포사회의 발전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노력과 시간과 자원이 엉뚱한 곳에 쓰여 낭비와 비효율을 빚고 있는 데 대해 상관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인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조사에 의하면 동포사회에서 가장 신뢰받지 못하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단체가 바로 한인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인회 활동에 참여하지 않거니와 오히려 한인회가 동포사회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인회 뿐 아니라 평통, 종교단체, 체육회, 상공인협회 등등의 단체가 빚는 분열과 갈등은 또 얼마나 잦은가. 그래서 숫자는 그렇게 많지만 재미 한인들의 (교회를 제외한) 한인단체 가입률은 20%가 안 된다고 한다.
좁은 땅에서 오래 농경사회로 정착해 온 민족이라 한국사회가 강한 연줄사회가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사람들 간의 신뢰의 범주가 혈연, 지연 등 일차적인 사회관계로 극히 제한되는 저 신뢰사회이기에 이미 연줄로 인해 가까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려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다원적인, 복합적인, 그리고 다기능적인 글로벌 사회에서는 가까운 사람보다는 멀리 있는, 모르는, 불특정 타인들과의 관계, 교류, 대화,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요즘 미국사회에서도 중요시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킹’이라는 것도 인맥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모르는 사람을 새로이 만나 좋은 관계를 맺자는 뜻이다. 그런데 이미 연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하고만 끼리끼리 어울린다면 그것은 진정한 네트워킹이 아니다.
유명무실하게 간판만 걸어놓고 있던 단체들이라면 간판을 내릴 것을 생각해 보고 또 새로 단체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 부학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