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전 남가주 엔시노에 사는 독자 이경희 씨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나이 70이 넘은 할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분은 지난여름 큰딸 가족을 따라 참가한 중국계 가족캠프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며 한인사회에도 이런 캠프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 분의 큰사위가 중국계 2세이다.
"우리 한인 젊은 세대도 이런 좋은 모임을 만들었으면 해요. 서로 유대도 쌓고 도움도 주고 자녀들의 정체성도 길러줄 수가 있을 거예요."
여름방학을 맞아 집집마다 부모들의 고민이 깊다.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아이들에게 뭔가 색다르고 알찬 경험의 기회를 주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시간과 돈을 쪼개 형편껏 가족여행을 가고, 자녀들을 서머캠프에 보내고, 한국말과 문화에 친숙해지도록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그러고도 남는 긴 방학, 아침부터 저녁까지 TV나 컴퓨터 앞에 붙박이로 사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들은 속을 끓인다. TV ·컴퓨터게임이 아이들의 베이비시터이자 친구 노릇을 한지 오래다. 사람보다 기계와 노는 데 더 익숙해진 아이들, 그들의 의식 속에 가족을 각인시키고, 가치관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는데, 위의 중국계 캠프가 좋은 모델이 될 것 같다.
이씨의 큰딸인 피부과의사 다나 고씨에 의하면 이 캠프는 20여 년 전 MIT에서 시작되었다. 어린아이를 둔 학생 커플 서넛이 같이 캠핑을 한 후 참가자가 점점 늘어서 연례 ‘동부 중국계 가족캠프’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서너 가족이 북가주로 이주하면서 ‘서부 중국계 가족캠프’가 만들어졌다. 현재 회원은 북가주 10여 가족과 남가주 10가족 정도. 근 20년째 매년 8월 초 페블 비치 세븐틴마일 드라이브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서 모인다. 3박4일 동안 어른과 아이들 합쳐서 120명 정도가 같이 먹고 자며 거대한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눔과 배려와 협동이 일어난다. 이씨 가족이 6~7시간 운전해 캠프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몇몇 남자아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우리 차에서 짐들을 꺼내 방까지 날라다 주는 겁니다. 봉사가 몸에 밴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삼남매가 초등학생인 고씨는 처음 캠프에 참가했을 때 대학생 자녀들이 같이 참석하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대학생들이 아이들을 돌봐주고 장기자랑 사회도 맡으며 적극적으로 모임을 이끌어요. 어린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롤 모델이 되지요."
캠프 프로그램은 쉴 틈 없이 빡빡하게 진행되는데 이 모두를 1년 동안 회원들이 분담해서 준비한다. 간식 담당, 비디오 담당, 게임 담당, 가족 올림픽 담당, 문화소개 담당 등이다. 고씨 가족은 지난해 문화 담당으로 ‘중국 왕조’를 소개하느라 삼남매와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재미있는 촌극까지 만들었다. 부모와 자녀가 긴밀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모든 걸 회원들이 직접 준비하니 캠프비용이 매우 싸다고 고씨는 말한다. 대부분 2세여서 중국말을 쓰지는 않지만 중국 문화와 전통을 주제로 하고, 중국계끼리의 모임이어서 아이들에게는 저절로 민족적 정체성이 심어지는 이점도 있다.
유년기의 인상적 경험은 종종 평생을 간다. 디즈니의 전 CEO이자 회장 마이클 아이스너 역시 성장기의 캠프 경험을 잊지 못한다. 캠프파이어가 남긴 인상은 특히 강렬하다.
"성냥의 작은 불꽃이 불쏘시개로 번지고 이어 잔가지로, 작은 나뭇가지로, 마침내 커다란 장작으로 번지는 과정이 언제나 흥미로웠다. 세월이 지난 후 보니 그것은 창조과정의 완벽한 은유였다."
불꽃이 번져나가듯 방송국에서 영화사, 마침내 디즈니라는 거대왕국을 경영했던 그는 그의 성공이 캠프파이어 불 피우면서 배운 직접적이고 은유적 교훈들 덕분이라고 회고했다.
아이들이 대자연 속에서 별을 바라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것이 부모와 함께라면 더 좋을 것이다. 그것이 여러 한인가족들이 함께 한 공동체의 경험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서머캠프의 전통이 한인사회에서도 만들어졌으면 한다. 캠프 경험이 우리 자녀들에게 얼마나 다채로운 영향을 미칠까 기대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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