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가릴 것 없이 누구나 가족의 사랑과 가정의 안식을 꿈꾼다. 미국인들의 이런 소망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홈 스위트 홈’에 잘 드러나 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내 집뿐이리”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작사한 사람은 극작가이자 배우인 존 하워드 페인이다.
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표현한 이 노랫말을 지었던 페인은 평생 단 한 번도 따스한 가정을 꾸려보지 못했다. 그는 1851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에 대한 고통을 토로했다. 페인은 얼마 후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지켜보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페인은 자신을 괴롭히는 심한 결핍감을 아름다운 노랫말을 통해서나마 채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19세기를 살았던 그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스위트 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나누고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옆에 오순도순 모여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그런 풍경이었을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바람직한 가족의 전형으로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의 의식 속에 확고히 자리 잡아 왔다. 여기에는 대중매체도 한몫했다. 광고에 등장하는 행복한 가족은 예외 없이 미소 짓는 부모와 행복에 겨워하는 자녀들로 그려진다. 여기에 부합되지 않는 가족은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진다.
하지만 가족은 지금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다. 가족하면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형태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2010년 센서스를 분석한 결과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기르며 살아가고 있는 가족은 전체 가족 가운데 2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 사이에 이런 ‘전통적 가족’은 10분의1이나 사라졌다.
이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겠지만 엄마나 아빠가 홀로 자녀를 양육하는 편부모 가족은 크게 늘었으며 이성동거와 동성부모 가정 역시 20% 이상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정상으로 보는 관점을 취한다면 전통적 의미의 가족은 더 이상 정상이 아닌 것이 돼 버렸다.
2010년 센서스를 앞두고 인구통계 전문가인 피터 프란시스는 이런 예상을 했다. “이번 센서스에서 미국 인구는 3억900만명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한 명이 실종될 것이다. 그 사람은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미국사회가 급속도로 다양화 되면서 더 이상 표준적인 미국인을 운운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되고 있다는 재치 있는 지적이었다. 프란시스의 언급을 살짝 바꾸어 본다면 오랫동안 미국사회에서 표준이 돼 온 전형적인 가족 역시 실종됐다.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로 기능해 온 핵가족마저 분열하면서 가족은 개인의 존재와 관계를 중심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가족으로조차 여겨지지 않았던 형태의 가족들이 탄생하고 사회적으로 당당히 인정받아 가고 있다. 거스르기 힘든 추세다. 글을 쓰면서 주위 사람들의 가족형태를 꼽아보니 대충만 헤아려도 다섯 가지가 넘는다.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회적 변화가 불편하고 불안할 수 있다.
이런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어휘는 한국에서 유독 끈질긴 생명력을 지녀온 ‘결손가정’이라는 말이다. 이 단어 속에는 전통적이지 못한(엄밀히 말해 전형적이라 여겨온 것에서 벗어난) 가족은 가족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오만과 고리타분함이 배어 있다.
규격을 들이대며 낙인을 찍다 보면 이것이 자신에게 족쇄가 되기도 한다. 비정상 가족으로 비춰지게 될까 두려워 속이 곪은 것은 감춘 채 겉으로만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경우가 그렇다. 이른바 ‘요새 가족’(fortress family)이다. 지키는 데만 급급한 이런 가족은 스위트 홈과 거리가 멀다.
페인이 노래했던 가족의 안식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이런 위로를 줄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가족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고 특정 형태의 가족만이 가치가 있다고 우기는 것이야 말로 다양성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비정상적인 태도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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