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치유 학설의 큰 축을 이루는 교류분석 심리학자 에릭 번은 우리의 인격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어릴 적 습득한 ‘아이’ 때 의식,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가치 기대감, 성인이 되어 사회 일원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어른’의 역할이다.
성숙된 ‘어른’은 ‘아이’와 ‘부모’가 행동요인으로 작동하는 수위와 범위를 이성적으로 조절할 줄 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부모’의 그늘이 ‘어른’으로서의 행동을 지나치게 지배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 때의 의식에 사로잡혀있는 경우들이 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비정상적 상태를 ‘아이’ ‘부모’ ‘어른’의 세 행동 요인이 균형있게 작동 하도록 돕는 것이 정신치료 임상심리 전문의들의 역할이다.
에릭 번의 인격분석 모델을 우리 한인사회 분석에 적용해 보자. 한인사회의 ‘아이’ 의식은 지연 혈연 학연들이 중심이 되겠다. ‘부모’에 해당하는 것은 두고 온 고국의 가치관 전통 문화 종교 의식 등이다. ‘어른’은 이민 와 살고 있는 현재의 ‘나’이다.
이민개척자 ‘나’는 한미 두 문화권에 놓인 경계인이다. 바람직한 에릭 번 모델의 경계인 ‘어른’ 은 양 문화의 특성을 비교 분석하여 나름대로의 행동 패러다임을 설정하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 문화와 가치관에서 상황에 따라 채택하고 유지하며 폐기할 것들을 분별할 줄 앎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 이민생활은 이분법적이다. 생활 인프라는 미국식이고 정서는 한국식이다. 다시 말해 몸은 미국에, 마음은 한국에 둔 생활이다. 이 생활은 편하고 보편화 되어있다.
그러나 이 생활패턴에는 사회비용이 따른다. 자녀들의 교육을 보자. 한국식 교육관의 두드러진 특성은 일류에 대한 집착이다. 이것이 미국에 와서는 아이비리그에 대한 강박증이 되었다. 아이비리그에 갈만한 능력이 있고 기회가 주어진 학생들을 말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비리그 아니면 교육 받을 데가 없는 양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 같은 유색인종은 최고학벌로 맞서야 주류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인식도 있다. 이 인식은 주류와의 비 동등성을 자인하며 지속시키는 행위다. 미국은 넓고 다양한 지역 중심사회이다. 각 지역에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준비하면 출신학교와 무관하게 성공할 수가 있다. 또 학위는 사회적 지위를 위한 것이 아니다.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해 자녀의 적성에도 맞지 않는 분야나 학교선택을 강요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열리는 한국대학 입시설명회에 미주한인 입시생들이 몰려드는 것 또한 한국식 교육관의 일면을 반영한다. 미국의 보통대학을 가느니 특혜와 전입으로라도 이름 있는 한국 대학을 나오고 보자는 의도일 것이다. 한국대학들의 무분별한 세계화에 현혹 되어 시간낭비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높은 가운데 이질적인 영어권 졸업생 취직이 쉬운 것도 아닐 뿐 더러 어떤 질의 교육을 받는 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OECD나라들 중 교수 당 학생 수를 보자. 한국 32.7명, 영국 16.9명, 프랑스 16.2명, 미국 15명, 독일 10.4명, 일본 10.4명, 스웨덴 8.5명이다. 한국 대학의 한 학생당 도서 량은 미국의 113개 최하위권 대학의 71권보다 낮은 70권이다.
서울대학이 한 학생당 쓰는 비용이 한화 25만원이다. 이것은 미국의 최하위권 대학이 학생당 쓰는 27만원 보다 낮다. 교육의 질로 본다면 미국에 사는 사람의 한국대학 선택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또 하나 한인사회에서 유행처럼 된 것이 한국의 유명 인사들을 연사로 초청하는 일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듣고 배워야 할 것은 미국의 특이한 조건과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야 한다. 한국의 견해와 가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미국서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한국선거 참정권도 문제다. 한국판 정치와 정치관을 미국에 이식하는 결과를 가져 올까봐 염려된다. 미주 한인들이 탁월한 정치판단과 함께 선진국 시민답게 투표권을 행사하여 한국정치인들의 책략을 무색하게 만드는 전례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한국계 주한 미국대사가 나올 만큼 우리도 성장하였다. 성장과 더불어 몸 따로 마음 따로의 이분법적 생활에서 몸과 마음을 통합한 창조적 패러다임을 추구할 때가 왔다.
차만재
칼스테이트 프레즈노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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