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어언 61년이 흘렀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아픔은 아직도 도처에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가족과 헤어져 반백년 넘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아픔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한국 전쟁 당시 그 분들은 젊은이들이었고 갓 결혼을 하였거나 미혼으로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부모의 권유에 의해 남쪽으로 잠시 피했다가 귀향할 생각으로 온 것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어”라고 그 분들은 말씀하신다. 기나긴 세월 동안 북의 가족을 그리워하다 끝내 기억상실증에 걸리신 분, 고향 장단역을 그리며 중풍 맞은 몸으로 서대문 집에서 걸어 걸어 서울역을 찾아 서성이시던 분 등 사연도 가지가지이다.
금강산에서 대면 상봉을 하고 돌아온 어느 어르신은 바로 그 날 입원을 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절망하여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것이다.
상봉을 하지 못한 분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상봉 장면을 TV를 통해서 보거나, 상봉하고 돌아 온 고향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실의에 빠져 계시는 많은 분들을 보았다.
이 지면에 다 기술하기 어려울 만큼 참으로 안타까운 수많은 사연들을 우리는 6년 간 영상에 담았다.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이산가족 정보통합센터 등록) 전체 12만8,496명(2011년 1월말 기준) 가운데 생존자는 8만2,512명이며 사망자는 4만5,984명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생존 혹은 사망 이산가족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생존자는 대부분이 80대 이상의 고령자로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한 시라도 바삐 모든 남북이산가족들이 가족의 생사를 알고, 또 지속적으로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한다. 아울러 생존해 있는 이산 1세대의 영상편지를 데이터베이스(DB)화 해야 한다. 그래야 작고한 후에라도 북의 가족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북에 두고 온 경우, 그들은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북의 자녀를 상봉하신 분에게 실제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길고 긴 세월, 무거운 침묵 속에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오해가 있었다면 영상편지를 통해 그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풀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얼마나 북의 가족을 그리워했는지 영상편지를 통해 그 절절한 사랑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영상편지는 차후에 남북이산 2,3세대와의 만남의 가교 역할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때 영상편지를 찍기 위해 일부러 미국에서 우리를 찾아오신 이산가족 어르신들이 계셨다.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남북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할 수 없었다는 분들이었다. 영상편지 촬영이 안 된다고 할까봐 밤잠을 설쳤다고도 했다. 우리는 그 분들을 촬영했고, 출국하시던 날 공항에서도 인터뷰를 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그들의 사연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개인, 한 가정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비롯한 전후 세대가 올바로 알아야 할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인 것이다.
우리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이산가족들의 영상편지를 제작하여 그 사연을 알리고, 이미 제작해 놓은 영상편지도 알릴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그러나 밀착 취재를 하는 우리로서는 아무리 열심히 제작을 하여도 생존한 모든 이산가족의 영상편지를 제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분이라도 더 돌아가시기 전에 정부차원에서 보다 밀착된 영상을 담은 이산1세대 영상편지 제작을 재개해주기를 기대한다.
2000년부터 금강산에서 18회에 걸쳐 1,874 남측 가족이 북의 가족을 대면 상봉했고, 2005년부터 7회에 걸쳐 279 가족이 화상으로 북의 가족을 만났다. 2007년에는 이산가족 금강산 면회소 준공식이 있었다. 정례 상봉, 편지 교환, 고향 방문 등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들의 보다 자유로운 만남을 위해 여러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단 한번 만나고 다시 긴 이별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두렵겠는가. 참으로 보기에도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회적이며 행사적인 분위기의 대면 상봉 혹은 화상 상봉이 초래하는 문제점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산가족들의 상봉 후유증을 정부는 잘 알 것이다. 그 분들의 실상을 부디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한마디로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이산가족상봉 행사인가’를 생각해 주기 바란다.
심향진
이산가족 영상편지 제작자
shimji97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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