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를 넘어 사는 미국인들의 수가 급속히 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0번째 생일을 맞는 노인은 뉴스에 등장할 정도로 드물었다. 그러나 이런 노인들이 크게 늘면서 100세 장수는 이제 더 이상 별난 얘기가 되지 않는다.
100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높아진 것은 나아진 의료 환경 등 많은 요인들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1915년 이후 영아사망률의 급속한 하락은 왜 최근에 100세 노인들이 급증하고 있는지를 가장 확실하게 설명해 준다. 오늘 태어난 여자아이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백수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까지 나온다.
인구 규모가 큰 탓이기도 하겠지만 미국은 100세 이상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 볼 때 평균수명은 여전히 낮다. 소득은 세계 최고수준인데 수명은 아직도 30위권 밖이다.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수명은 아주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좌우된다. 어떤 유전자를 타고 나느냐가 물론 가장 중요하다. 개인들의 습관과 생활방식 역시 건강과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 수준도 수명과 떼어서 생각하기 힘들다. 경제적인 형편이 좋으면 더 오래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지만 이것도 어느 수준까지 만이지 한없이 정비례 하지는 않는다.
아주 못사는 나라들, 혹은 못사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형편이 향상되면 수명도 조금씩 늘어난다. 그러다가 소득이 일정 지점을 넘어서면 소득과 수명의 상관관계는 사라진다. 1인당 소득이 5만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평균수명이 1만달러 미만의 소득수준을 가진 나라보다 낮은 것이 바로 이런 경우다.
아주 오랫동안 건강과 수명은 개인적인 책임으로 환원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국민들의 수명과 관련해 정치의 역할을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의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조류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지난 2009년 출간돼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정신 수준: 더 큰 평등은 왜 사회를 더 강하게 만드는가’(The Spirit Level: Why Greater Equality Makes Societies Stronger)이다.
영국 노팅햄 의대의 역학자인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크 피켓이 공저한 이 책은 사회의 건강성과 구성원들의 수명을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평등’이라는 사실을 미국을 비롯한 선진 20개국의 자료들을 분석해 밝혀내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이들 나라 가운데 평등지수가 가장 높은 일본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평균수명이 가장 길었으며 평등지수가 낮은, 즉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미국과 포르투갈의 평균수명이 가장 낮았다.
일정수준 이상의 ‘소득’과 수명은 상관관계가 없지만 ‘소득 불평등’은 수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이처럼 평등은 사회의 건강과 행복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왜 미국의 소득수준은 최고인데도 수명은 최고수준이 아닌지 속 시원히 의문을 풀어준다.
이 연구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이런 평등이 하위계층뿐 아니라 최상위층의 건강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는 데 있다. 구성원들이 고루 잘 살 때 상위계층의 수명 또한 늘어난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자기 재산을 내놓으면서 평등 구현에 앞장서고 있는 미국의 일부 부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사회정의를 위해서 뿐 아니라 결국 스스로를 돕는 일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현명한 사람들이다.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불평등의 여파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네트도 없이 높은 곳에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벌어지는 정치판 싸움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안전네트를 둘러싼 논쟁으로 귀결된다.
안전장치 없이 외줄을 타야하는 사회의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저축은행에 맡겼던 돈이 연기처럼 사라진 것도 억울한데 힘 있는 사람들은 미리 돈을 빼내갔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하는 서민들의 표정에서 불평등한 사회의 절망감이 읽힌다. 그래서 좋든 싫든 정치는 우리네 삶과 무관할 수 없다.
국민들이 좀 더 건강해지는 사회를 위한 처방은 자명해진다. 그 해답은 평등을 구현하는 제대로 된 정치에 있으며 선택은 오롯이 구성원들의 책임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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