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 주필
세상이 혼탁해질수록 제명에 죽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암 같은 난치병이나 스트레스 등 현대병에 희생되는 사람도 많고, 불의의 교통사고나 강도에게 총맞아 죽는 사람도 많다. 지진, 쓰나미 등 천재지변으로 떼죽음 당하는 사람도 옛날보다 많아진 것 같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이런 사람들이 애처롭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스스로 제명을 단축시키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선 2008년 한해에 1만 2858명이 자살한 것으로 통계청이 밝혔다. 매일 35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2000년엔 인구 10만명당 13.6명꼴이었던 자살률이 8년 사이 26명으로 두배나 늘어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0개 회원 선진국 가운데 몇 년째 톱이다. 미국의 연간 자살자는 3만 3300명(2006년)이라고 한다. 하루 91.2명, 15분마다 한명씩 자살한 셈이지만 인구규모를 감안하면 한국보다 훨씬 적은 수치다.
실제로 한국에선 지난 몇 년 간 대통령, 기업인, 영화배우, 탤런트, 코미디언, 일반 가장, 주부, 학생 등 계층이나 남녀노소 구분없이 자살자들이 줄을 이었다. 며칠 전에도 장래가 촉망되는 여자 아나운서가 고층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해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신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혹은 경제적 상처를 안고 있으므로 이들의 자살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가 처해 있는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아마 요즘 한인사회에도 “죽어 버리고 싶다”는 막다른 심리상태의 한인들이 없지 않을 것 같다. 이들이 그나마 버티는 것은 일단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떻게든 생명을 끝까지 지키며 끌고 가야 한다는 본능적인 책임감과 소명의식 때문일 것이다.
중국 효경의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몸과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를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라는 가르침의 영향도 은연중 작용할지 모른다.
흔히 미국사람들은 건강하게 살기(well-being), 탈 없이 늙어 가기(well-aging) 및 존엄하게 죽기(well-dying)를 원한다고 말한다. 우리들이 5복으로 꼽는 수, 부, 강령, 유호덕, 고종명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잘 살고 잘 죽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살다보면 고약한 병에 걸릴 수 있고, 결혼파탄이나 사업실패 등으로 좌절에 빠질 수도 있다. 이민자들이 흔히 겪는 역할 상실감과 소외감, 고독 따위로 삶에 대한 의욕과 열정을 잃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생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소지가 충분히 있다. 이런 상황은 평소 삶을 즐겁고 힘차게 영위함으로써 대처할 수 있다. 힘들지 않는 삶은 없다.
위기가 기회이며, 인간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소나기 뒤에는 반드시 무지개가 뜬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웰빙의 기본 요소는 마음에 한(恨), 분함 따위의 응어리가 쌓이지 않도록 사랑, 용서, 아량 등의 좋은 감정을 간직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또 ‘나’ 중심이 아니라 ‘신뢰’를 중심으로 한 좋은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카네기 대학이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전문지식이나 기술의 결여가 원인이었던 사람은 15%에 불과했고, 나머지 85%는 잘못된 대인관계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냈다.
영국의 한 심리학자는 인생의 4분의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4분의3은 늙어가면서 보낸다고 말했다. 삶은 어차피 한번 뿐이다. 죽는 날까지 강건하고 풍요롭게 살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미련없이 마감하는 것이 복된 삶이 아닐까? 그런 삶은 본인의 마음과 생각에 달려 있다. 힘든 고빗길에서 핸들을 어느 쪽으로 트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방향에 따라 힘들어도 행복할 수 있고, 아무리 돈이 많고 잘 나가도 죽음의 벼랑으로 치달을 수 있다.
웰빙의 또 다른 핵심요소는 일에 대한 열정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일을 적극적으로 해보라. 죽고 싶은 생각이나 우울한 마음도 발붙일 틈이 없다. 밝은 해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 떠오른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잘 살아가야 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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