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뜸했다. 미국인들은 이명박이란 이름은 잘 모른다. 그러나 김정일 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요즘에는 김정은이란 이름에도 제법 친숙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 언론에 등장했던 게 North Korea에, Kim Jong Il, Kim Jong Un 부자였으니까.
그 Kim Jong Il이란 이름이 꽤 오랜 동안 미 언론에 등장하지 않았다. 아랍 민주화에, 일본 대지진 쓰나미 참사에, 또 오사마 빈 라덴 사살뉴스에 가려서다.
김정일이 다시 매스컴을 탔다. 동선(動線)은 비밀에 부쳐졌다. 그리고는 예의 그 전용 리무진 열차를 타고 장장 수천 킬로미터의 중국방문 길에 나서면서다.
그러나 예전 같은 주목은 받지 못했다. 그 행보가 자못 기이하기는 하다. 그러나 뭐 달라진 게 없다. 식상할 정도다. 그래서 인지 미 언론이 보인 태도는 냉담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보도 행간 행간에서 느껴지는 것은 비웃음에 조롱이다.
“경애하는 지도자는 위대한 지도자인 아버지 김일성도 일찍이 이룩하지 못한 위업을 달성했다. 1년에 3번이나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아시아 위크지의 비아냥이다. “항상 남을 해치려다가 오히려 제가 불이익을 당한다.” 디플로매트지의 김정일 인물평이다.
“나라 전체가 거대한 강제노동 수용소다.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 것만이 아니다. 국제 사회에 항상 해악을 끼친다. 그 북한 체제에는 해외정책이란 것이 없다. 있다면 범죄기록이 있을 뿐이다. 테러를 통한 학살에, 핵 확산에, 마약밀매에, 외국인 납치에, 인신매매에….”
이번에는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이 북한 체제를 국제사회는 포용해야 하는지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일의 중국방문에 전혀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애하는 지도자의 ‘잠행성 방중’의 베일이 벗겨진 지금 ‘…역시나’라는 게 미 언론이 보이고 있는 전반적인 반응 같다.
6자 회담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 할지 모른다. 김정일의 중국방문에 거는 우선적인 기대였다. 그 기대도 그렇지만 반감된 느낌이다.
중국과 북한 관영매체들이 김정일 방중성과를 공개하면서 가장 먼저 부각시킨 것도 ‘김정일이 6자 회담 조기재개를 희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입장 표명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구체적 조치에 대한 언급도 없다.
말하자면 회담 성과를 내외에 부각시키려는 중국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끌려온 모양새로, 진정성이 결여된 느낌이다. 때문에 한국은 벌써부터 시큰둥한 반응이고 6자 회담 조기재개 가능성을 아무도 예단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경제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김정일의 방중에 대한 또 다른 기대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예전과 달리 이명박 한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의 방중사실을 알렸다. 중국의 발전상황을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한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 방문목적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 사실 김정일은 개혁개방이 중국 경제를 발전시킨데 대해 많은 말을 쏟아냈다. ‘중화대지의 약동하는 발전상을 직접 목격했다’는 등의. 이 같은 ‘북경 내러티브’에 대한 찬사를 그러면 북한 경제의 개혁 신호탄으로 해석해도 좋을까.
“그저 립 서비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다. 마커스 놀란드 등 북한 전문가들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김정일의 진짜 관심사는 경제개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으로 3대 세습 지지를 이끌어 내려는 데 있다는 점을 이 신문은 주지시켰다.
“악한 정부가 가장 위험할 때는 개혁을 시도할 때다.” 알렉시스 토크빌이 일찍이 한 말이다. 이 금언은 18세기뿐이 아니라 21세기에도 통용된다. 독재체제가 딴에 개혁을 시도한다. 그러다가 망한 경우가 하나 둘이 아니다. 가장 최근의 예가 무바라크의 이집트다.
“과거 2001년에도 김정일은 상해를 둘러보았다. 이후 적어도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있다. 평양의 건물들을 상해 식으로 개수토록 건축재교육명령을 내린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다. 이 신문은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김정일 패밀리 비즈니스’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김정일은 잘 알고 있어 중국식 개혁개방은 전혀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 본 것이다.
김정일의 잠행방중이 남긴 것은 그러면 무엇인가. 김정일이 존재하는 한 북한에서의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으로 알린 것이 아닐까. 열차를 타고, 그것도 행선지를 비밀에 부치고 수천마일을 순행한다는 아이디어가 그렇다. 시대착오도 보통 시대착오가 아니다. 게다가 수령절대주의의 옷을 입고 있는 북한 체제는 변화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다.
그 김정일에 중국의 네티즌들은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니다. 중국의 민심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체제 북한은 중국의 전략적 완충지역(buffer)이라기보다는 부담(burden)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면서.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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