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는 불후의 대작들을 많이 남겼다. 그러면서 도덕적인 교훈을 주기 위한 단편들도 꽤 여러 편 썼다. 단편들에는 말년에 기독교적 인생관으로 기운 톨스토이의 철학이 잘 드러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다소 긴 제목의 단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파흠이라는 이름의 농부다.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었던 파흠은 바시키르라는 마을의 이장이 땅을 아주 싼값에 판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이장은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파흠이 해가 지기 전에만 돌아온다면 그가 하루 종일 걸어서 간 곳까지의 땅을 단돈 1,000루블에 전부 주겠다는 것이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하던 파흠은 이른 새벽 땅을 차지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그는 점심까지 거른 채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며 욕심을 부리며 달리다 해가 지기 직전 가까스로 돌아온다. 하지만 너무 무리한 탓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을 거둔다. 파흠에게 필요한 땅은 결국 자신의 몸을 누일만한 작은 구덩이 하나뿐이었다.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자기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단편에 대해 “세계 문학계가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고까지 극찬했다. 아마도 소설이 던져주는 메시지의 극적인 명징성에 매혹된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탐욕에 관한 교훈을 주기 위해 톨스토이가 너무 극단적인 설정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넘쳐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융계의 총아로 떠오르다 인사이드 트레이딩이 들통 나는 바람에 몰락한 헤지펀드 갤리언의 설립자 라지 라자라트남이다. 그는 내부정보를 이용, 수천만달러의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로 체포돼 지난 주 14개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평결을 받았다. 한때 18억달러의 재산을 모아 세계 몇 백 번째 부자 안에 들었던 라자라트남은 이제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처치가 됐다.
워런 버핏 후계자로 유력시 되던 데이빗 소콜 역시 인사이드 트레이딩을 했다는 의혹을 받자 최근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억만장자인 그가 이 거래로 번 돈은 고작 300만달러. 큰 명예와 부가 보장된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직을 이 돈과 맞바꾼 셈이 됐다.
이미 충분히 부자가 돼 있는 사람들이 왜 ‘푼돈’(?)을 더 벌려고 무리수를 두다 패가망신을 자초할까. 답은 물론 탐욕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답은 돈에 대한 열망이 왜 한계를 모르고 지속되는지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이런 추상적인 대답보다는 돈의 ‘물질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데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돈 하면 어떤 형상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돈의 움직임은 구체적인 물질이 아니라 가상공간에서 숫자의 흐름으로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액수가 많아도 그 크기를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 불법도박 수익금 110억원을 바꿔 마늘밭에 숨겨온 사람이 적발됐다. 110억원은 5만원권으로 10kg 사과박스 8개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이 사람은 집안 곳곳에 돈을 숨겨오다 더 이상 숨길 공간이 없게 되자 고육지책으로 마늘밭을 생각해 냈던 것이다.
라자라트남의 재산 18억달러를 100달러짜리로 바꿔 10kg 사과박스에 보관한다면 얼마만큼의 분량이 될까 대충 계산해 보니 무려 700여 상자에 이른다. 자신의 재산을 이렇듯 엄청난 양의 현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면 더 이상의 재산은 그에게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으로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거래로 돈의 물질성이 사라지면서 포만감은 갈수록 채워지기 힘든 무엇이 되고 있다.
톨스토이가 살아서 오늘의 광경을 보았다면 자신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세태에 혀를 끌끌 찼을 것 같다. 그러면서 라자라트남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속편을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목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
주인공의 성공과 몰락을 쭉 풀어가다가 이렇게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때 수십억 달러를 주무르던 거부였지만 결국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감옥에서 사식 사먹을 만큼의 돈뿐이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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