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파산신청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기보다는 올 것이 왔다는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나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미국 5대 교향악단 중 하나이고 100년이 넘는 전통과‘필 톤(Phil-Tone)이라는 독특한 음색을 구사하는 그들이기에 이 일은 관심 있는 음악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우선 미국의 대부분 공립학교에서 음악을 포함한 예술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의 경우를 보아도 지난 70년대 후반 프로포지션 13이 통과된 후로 모든 교육구에서 예산삭감을 이유로 음악시간과 같은 소위 “없어도 큰 지장을 받지 않는 과목”을 대거 탈락시켜 버린 것이다.
특별히 음악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은 밴드부에 가입하여 활동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학생 모두에게 제공하는 일반 음악교육을 사실상 폐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접하는 음악이란 TV나 라디오 등 미디어를 통해서 나오는 수준이 낮거나 해로운 대중음악이 전부이다. 이것은 미국 일반 시민이 받아야 할 전인교육의 중요한 부분인 기본적 음악교육의 기회가 원천봉쇄된 것을 의미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요인은 교회음악의 세속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학교가 음악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회도 지난 80년대부터 전통적 교회음악을 멀리하고 유행에 민감한 대중음악이 예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교회 대부분은 오르간이나 피아노대신 기타와 드럼이 강단에 놓인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근대 서양음악의 바탕은 기독교 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클래식 음악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교회음악의 세속화는 일반 공교육이 포기한 음악교육을 또다시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목회자는 일반 대중이 친숙한 음악을 도구로 삼아 복음 전파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사리에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상은 목회자의 음악적 수준이 더 근본문제라 본다. 또 이것은 그들이 신앙에 부합한 음악적 소양을 제대로 개발시키지 못한 신학교에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한편 클래식 음악을 방송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어떠한가. 서양 근대 음악사에서 각 작곡가들이 차지하는 분명한 비중이 있고 그들 작품의 예술성에 따라 합리적인 주목을 받고 연주의 빈도가 성립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실상은 LA지역의 유일한 클래식 음악 방송국인 KUSC의 경우 청취율이 가장 높은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체증에 짜증난 운전자들을 위한 ‘Anti-Road Rage Music’을 틀어준다. 그 외 시간에도 앞서 말한 음악의 진정한 가치를 기준으로 방송하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그나마 있어서 다행인 클래식 방송도 일반 청취자의 음악적 소양을 키우는데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런 경향은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근자에 들어 LA 필을 비롯한 주요 연주단체들의 프로그램을 보면 비중이 큰 작곡가들 예컨대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작품보다는 후기 낭만파나 러시아 근대 작곡가의 곡들을 너무 자주 연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간혹 전통적 음악이 연주되는 경우에도 그 음악회 표를 구하기 어렵고 다른 원치 않는 무명의 현대 작곡가 연주회 표를 같이 사야 하는 이른바 ‘시즌 티켓’제도 때문에 나 자신도 최근 여러 해 동안 음악회에 가는 빈도가 훨씬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경향은 교향악단뿐 아니라 실내악이나 독주악기를 연주하는 음악회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되어 버렸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다 알듯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 땅에 온 청교도에 근거한다. 다만 그들은 민족배경으로 볼 때 앵글로색슨 계열로서 영국으로부터 민주주의와 기독교 신앙은 가져 왔지만 음악적인 예술성 면에서는 훨씬 낮은 수준의 후예들인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후에 음악적 재능이 우수한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출신의 이민이 들어와 미국이 이 정도의 음악기반을 쌓게 된 것은 아주 다행스런 일이라 여겨진다.
조정훈
건축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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