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를 보는 시각은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국가나 집단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폭력이라는 수단을 동원할 경우 어떤 것을 범죄로 규정할 수 있을지 딱 잘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한쪽에서는 의거라 보는 행위가 상대편에서는 테러가 되기도 한다.
테러의 개념과 관련해서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캐나다 정치학자인 조너선 바커의 정의다. 바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을 목표물로 삼아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실제로 실행하는 행위”를 테러로 보았다.
수천명에 달하는 무고한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간 9.11 참극은 전형적인 테러이다.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은 이런 행위를 ‘성전’이라 지칭하고 테러리스트를 ‘순교자’로 미화하지만 이것은 테러이고 극악한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9.11테러를 주도한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에 의해 사살됐다. 빈 라덴은 미국인들에게 망령 같은 존재였다. 지난 10년 간 미국인들의 의식을 가장 강력하게 지배했던 인물은 정치인도, 종교인도, 예술가도 아니었다. 빈 라덴이라는 테러집단의 수장이었다. 9.11을 기점으로 미국인들의 가치관과 정신세계는 이전과 달라졌다. 확실성과 낙관이 지배하던 자리에 불확실성과 불안이 들어섰다.
9.11테러 자체가 안겨준 공포에 더해 정치인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런 감정을 부채질했다. 반복되는 자극을 통해 미국인들의 공포는 확대재생산 됐고 이것은 수많은 젊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희생된 명분 없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성의 위기’라 할 수 있는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인물이 빈 라덴이다.
빈 라덴이 제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인들은 환호했다. 국제사회에서 ‘종이호랑이’ 소리를 들으며 구겨졌던 자존심이 조금은 회복됐다는 표정들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빈 라덴의 제거는 상징적이고도 제한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가 사라졌다고 세상이 더 안전해 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쏟아지는 보복 위협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2일 증시가 빈 라덴 제거소식에 힘차게 출발했다가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이런 전반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빈 라덴은 죽었지만 그의 추종자들에 의한 테러 기도는 계속될 것이다. 미국은 천문학적 돈을 들이며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왔지만 테러도발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빈 라덴 제거를 계기로 전반적인 전략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옥스포드대학의 사회학자 디에고 감베타는 “자살테러에 반드시 종교적인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종교가 연관되었다 하면 그것은 늘 이슬람교”라고 지적한다. 진화심리학은 이런 현상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한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자살 폭탄테러는 그들 문화 속의 일부다처제와 “순교를 하면 천국에서 72명의 처녀가 기다린다”는 이슬람교의 약속이 결합돼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 자살 폭탄 테러범들이 예외 없이 일부다처제 경쟁에서 낙오돼 사회적으로 번식의 기회가 제한된 독신남자들이라는 사실은 이런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이것은 미국이 군사적인 옵션에 국한된 접근법만으로는 테러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그런 측면에서 중동지역,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들의 성장과 민주화를 지원하는 일은 중요하다. 민주화를 통해 정권이 세속화되면 될수록 극단주의가 발붙일 땅은 좁아지게 된다. 현재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예멘의 장래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빈 라덴을 빌미로 시작돼 두 개의 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마무리 짓는 문제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아프간에 은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던 빈 라덴이 제거됨에 따라 아프간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명분과 여건은 어느 정도 마련된 셈이다. 남은 것은 정치적 협상이다. 오바마의 의지와 현명함이 발휘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빈 라덴 제거에 따른 가장 큰 수혜자는 오바마 대통령이다. 경제문제 때문에 흔들렸던 입지가 강화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도 높였다. 그러나 일시적 인기에 도취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다시 고조되는 테러위협과 공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국민들이 조심하면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도록 달래고 안심시키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강력한 정치적 도구는 없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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