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윌리엄 왕자 결혼식이 세계적 화제가 되었다. 29일 거행된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식’ 이라는 레이블이 붙으며 요란한 조명을 받았다. 신부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드레스는 물론 액세서리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았고, 결혼식장에 초대된 손님 1,900명은 누구이며, 영국의 두 전 총리는 왜 초대받지 못했는지, 오바마 대통령이 초대 명단에서 제외된 이유는 무엇인지 … 시시콜콜 뉴스거리가 되었다.
성대함과 화려함에서 극치를 이뤘다는 이번 결혼식 비용을 한국의 한 미디어는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도 다 못 써볼 액수이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게 살 권리를 타고 났지만 실제 삶의 조건에서 우리는 결코 평등하지가 않다.
왕자의 결혼에서 가장 큰 매력은 그 결혼이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결실이라는 점이다. 선조가 광부인 평민의 딸과 왕자가 10년의 사랑 끝에 결혼에 도달한 러브스토리는 전 세계 보통사람들에게 동화 같은 감동을 주었다. 문자 그대로 ‘신데렐라’와 ‘백마 탄 왕자’ 스토리이다.
왕실 결혼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 비슷한 결혼식이 있었다. 몇 해 전 성인영어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클래스메이트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랑은 부유층 백인남성, 신부는 멕시코 태생 불법체류자였다.
출신배경으로 볼 때 물과 기름 같은 남녀가 만난 것은 신랑 부모 소유의 한 회사에서였다. 부모의 경영을 돕던 청년이 그 회사 직공으로 일하던 여성을 만났다.
중학교 중퇴의 까무잡잡한 멕시코 여성은 처음 그의 관심권 밖이었다. 하지만 왠지 자주 마주치면서 그 여성의 한없이 착하고 순박함이 콧대 센 백인여성들에 신물 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와 끼니 걱정하며 살던 여성은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었다.
‘신데렐라’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없지 않다. 남자 잘 만나 신분상승 하려는 여성의 허영심을 상징하곤 한다. 하지만 ‘신데렐라 탄생’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사랑의 힘으로 신분이나 계급이라는 공고한 장벽을 허물어트리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백마 탄 왕자’가 동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신분의 장벽을 뛰어넘고 싶은 욕망, 계급에 기초한 질서를 타파하고 싶은 염원이 사회저변에 강하다는 반증이 된다.
그러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계급적 차별 없는 평등사회이니 신분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신데렐라’나 ‘백마 탄 왕자’는 일상적 현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60년대 중반 민권운동 이전까지 미국은 평등사회가 아니었다. 법으로는 평등을 보장하면서도 인종 간 격리가 철저했다. 학교를 비롯한 모든 시설을 백인용, 흑인용으로 분리하면서 시설이 유사하니 결국은 평등한 것이라는 궤변을 내세웠다. ‘분리되었지만 평등(separate but equal)’의 원리였다.
피부색에 따른 분리가 사라진 지금 미국사회는 어떤 의미에서 더욱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소득에 따른 분리이다. 지역에 따라 집값과 렌트비가 다르니 소득이 거주지를 결정한다. 인종분리정책은 사라져도 백인동네, 흑인 혹은 히스패닉 지역이 여전한 것은 소득이 자연스럽게 빈민지역, 중산층 혹은 부유층 지역을 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의 한인들은 수십년을 남가주에 산다 해도 사우스 LA의 흑인빈민을 만나거나 벨 에어의 백인 부호를 만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옷깃을 스칠 확률이 너무나 낮다.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를 가능성은 더 더욱 낮다.
탈무드에 솔로몬 왕의 딸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왕은 영리하고 아름다운 그 딸이 전혀 걸맞지 않는 남성을 배필로 맞는 꿈을 꾸었다. 왕은 즉시 딸을 외딴섬의 별궁에 감금하고 누구도 들어갈 수 없게 높은 담을 쌓고 경비병을 배치했다.
그런데 그 공주 앞에 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젊은이는 광야를 헤매다 밤이 되며 추워지자 죽은 사자 곁에서 잠이 들었다. 그때 커다란 새가 날아와 사자 털가죽 째 들어 올려 공주의 별궁 위에서 그를 떨어트린 것이었다. 공주와 젊은이는 사랑에 빠졌다. 만날 인연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소득계층별 분리와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조건이라는 장벽을 뛰어넘는 동화 같은 인연들이 많았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데렐라’와 ‘백마 탄 왕자’를 환영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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