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것 같던 자동차가 갑자기 도로 위에서 멈춰 정비소에 끌고 갔더니 트랜스미션이 고장 났다고 하더라며 지인이 푸념을 늘어놓는다. 절약모드로 살아가고 있는데 2,500달러라는 거액이 생각지도 않게 나가게 됐으니 짜증이 날 법도 하다. 그러나 이미 발생한 일, 짜증을 낸다고 아무 것도 달라지거나 해결되지 않는다.
이럴 때 상대에게 건넬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작은 위로뿐. 그래서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겨 화도 나고 부담도 되지만 지나고 보면 이런 것들 때문에 치르는 재정적, 감정적 지출의 합계는 비슷해지는 법”이라며 “그런 비용을 지금 지출한다고 여기라”고 했더니 조금은 위안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구력이 오래된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는 ‘내기 돈 총량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 통용된다. 평생 내기골프에서 잃게 되는 돈과 따는 돈의 액수는 비슷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수한테 잃고 하수한테 따며 신참일 때 잃고 고참일 때 따서 나중에는 들어온 돈과 나간 돈이 얼추 같아진다는 논리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이런 ‘총량불변의 법칙’에는 상당한 진실이 들어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과 행복, 그리고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불안과 걱정의 총량에는 궁극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다만 때와 형태를 달리할 뿐이다. 지금은 나와 타인의 상황이 다르고 그래서 타인들은 더 행복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일시적으로는 정말 그럴지 몰라도 시간의 흐름 속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결국 총량은 엇비슷해 진다.
인권문제를 영화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게 풀어낸 ‘불편해도 괜찮아’를 펴낸 김두식 변호사는 책에서 딸과 관련한 일화를 들려준다. 독립심이 강한 딸이 권위에 반항하며 말썽을 피워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선생님이 ‘지랄 총량불변의 법칙’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선생의 설명인 즉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이는 인생의 다른 시기에 써버리기도 하는데 어쨌든 죽기 전까지 그 양을 전부 다 쓰게 돼 있다는 것이 이 법칙의 핵심이다. 그러니 사춘기 자녀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려니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자녀들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부모들이라면 이 조언에 따라 관점을 조금 달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면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도 완전히 허튼 소리는 아니다.
경제학에 나오는 ‘기회비용’에도 총량불변의 법칙이 투영돼 있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어떤 것을 비용으로 치러야 한다는 것이 기회비용의 개념이다. 최근 한 투자회사가 수백만달러 이상의 투자자산을 가진 미국부자 47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절반 이상이 부자가 되기 위해 사생활과 개인관계, 그리고 건강을 대가로 치렀다고 응답했다.
조사에 참여한 한 연구원은 “부자들은 그 많은 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정적으로 안정되지 않았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재산이 없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등 돈 없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들려준다. 돈은 너무 있어도 고민, 너무 없어도 고민이다. 호주 언론인 피터 핏시몬스가 관찰한 ‘걱정 총량불변의 법칙’이 여기에 꼭 들어맞는다.
물론 총량불변의 법칙은 과학의 법칙이 아니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 확인된 경험의 법칙일 뿐이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보편적인 지혜라 보면 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했던 솔로몬의 경구는 총량불변의 법칙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분노하고 고민하기보다는 총량불변의 법칙을 떠올리며 좀 더 길게 생각하고 넓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단편적인 상황에 애면글면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삶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숨쉬기가 한결 편해질 것이다. 심리적 웰빙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객관적 상황 자체가 아니라 해석이니 말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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