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년 만에 다시 2만달러대로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한국의 실질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즉 경제성장률은 6.2%에 달했다. 지표로만 보면 경제는 큰 폭으로 성장했다. 국민소득이 늘고 경제가 성장했다면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져야 하는데 서민들은 오히려 살기가 힘들어졌다고 아우성이다.
정부는 자신들의 업적 과시를 위해 거시 경제지표에 집착하지만 이 지표들은 현실의 살림살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컬럼비아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경제지표들 때문에 우리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 더 확고해졌다고 꼬집는다.
모든 정부들이 집착하는 경제성장률의 기본이 되는 GDP의 내용을 살펴보면 왜 이런 지적이 나오는지 보다 분명해진다. GDP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경제활동만을 반영하고 있는 수치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사회가 비효율적으로 돌아가면 그런 비효율성 때문에 GDP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유럽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의료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의료시스템의 효율성이 떨어질수록 GDP는 상승한다. 개인들은 더 못살게 됐는데도 1인당 GDP는 얼마든 올라갈 수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으로 1968년 대선전에 나섰던 로버트 케네디는 캔사스대학 연설에서 “우리의 국민총생산은 한 해 8,000억달러가 넘지만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광고, 우리가 문을 잠그는 특수 자물쇠, 그리고 그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교도소가 포함된다. 하지만 우리 도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장점, 공무원의 청렴, 우리의 해학과 용기, 국가에 대한 헌신과 열정 등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은 제외된다”고 역설했다. 케네디의 연설은 외형적 성장의 허구성을 꿰뚫은 명연설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최악의 침체가 누그러들면서 회복이 시작됐다는 진단들이 나오고 있다. 지수 상으로는 그렇지만 서민들의 피부에는 훈훈한 기운이 별로 와 닿지 않는다. 성장의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이런 불균형은 한국과 미국이 닮아 있다. 한국의 경우 노동소득 분배율이 6년래 최저치이며 미국 역시 그렇다.
미국의 경우 이런 분배의 불균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CEO들의 연봉이다. 경기침체의 여파로 수천만 미국인들이 생존의 경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서도 지난해 미국 대기업 CEO들의 연봉은 치솟았다. 일부 대기업 CEO의 연봉은 얼마나 많이 올랐던지 이것을 ‘죄악’으로 지칭하는 종교인들이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이들은 꿈쩍도 않는다. 부자들의 돈은 밑으로 흘러내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게 돼 있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리라는 주장을 되풀이 한다. 이른바 ‘트리클다운’ 이론이다. 지난 30년간 미국의 경제와 정치를 지배해 온 이 이데올로기는 허구임이 드러났는데도 일부 보수진영과 탐욕스런 부자들 사이에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투입한 돈 1달러당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크기를 승수라 부른다.
미국경제의 단기승수는 보통 1.5정도로 본다. 경기부양에 1달러를 쏟으면 1달러50센트 정도 소득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그러나 부유층 세금감면의 승수효과는 1에도 훨씬 못 미친다. 부자들의 주머니를 불려줘도 그 돈은 제대로 흘러내려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실업자들에게 수당을 주면 승수효과가 훨씬 크다.
“우리는 경제성장이 충분히 이뤄지고 나면 사회적 병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번영과 특권은 파이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확산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증언한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영국의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이같이 트리클다운의 허구성을 고발했다.
성장은 필요하다. 하지만 균질성을 상실한 성장은 성장하지 못한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행감은 날로 줄어드는 실질소득보다 이런 균질성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 더 크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들은 마구 쏟아져 나오는데 내 살림살이는 오히려 군색해졌다면 좌절감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만의 경기회복’이 ‘우리 모두의 경기회복’이 되는 날은 언제일까. 서민들의 봄은 여전히 멀어만 보인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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