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인 프랑스어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는지 작가 볼테르는 번역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번역으로 인해 작품의 흠은 늘어나고 아름다움은 훼손된다”는 독설을 날렸다. 볼테르의 독설은 번역의 한계를 꼬집는 유명한 명제로 남았다.
번역은 그냥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행위가 아니다. 얼마 전 급서한 소설가 이윤기는 높은 평가를 받았던 번역가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번역을 ‘원문과 역어를 천칭에 다는 일’에 비유했다. 원문에 꼭 맞는 역어를 찾을 수 없는 것은 필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문의 뉘앙스와 균형이 맞는 역어를 찾으며 벌이는 시소게임이라는 것이다.
미 언론의 호평을 받고 있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번역한 김지영씨는 “미국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도록 옮기는데 가장 신경을 썼다”고 밝힌다. 이 소설이 미국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원작의 뛰어남을 뒷받침하고 있는 김씨의 유려한 번역에 힘입은 바 크다. 단순한 문자의 옮김이 아니라 의미의 옮김이 될 때 번역은 비로소 제 역할을 한 것이 된다.
이처럼 번역은 잘해야 본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흔히들 “번역은 반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칫 반역이 될 수도 있는 번역을 통해 인간의 삶은 한층 풍요로워졌다. 번역은 다른 이들의 어깨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놓여진 사다리이다. 그 어깨 위에서 우리는 더 멀리 보고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번역의 중요성에 가장 먼저 눈 뜬 국가는 일본이었다. 일찍이 네덜란드와의 교류를 통해 서양문물을 적극 수입하던 일본은 19세기에는 아예 국가적 차원의 번역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수만 종의 서양학술서들을 번역했다. 근대화를 이룬 일본의 힘은 번역에서 나왔다. 일본이 번역한 수많은 서양의 어휘들은 고스란히 우리 것이 되어 있다.
번역에 관한 한 일본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풍토는 여전히 척박하다. 이런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난 상징적인 ‘사고’가 바로 한국정부가 외국과 맺은 무역협정의 무더기 한글오역 사태이다.
미국, 유럽연합 등과 맺은 무역협정에서 발견된 오역은 현재까지만 해도 수백
개에 달한다. 전문가에게 의뢰할 경우 들어가는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하다 보니 생긴 실수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해명이다. 수조원을 펑펑 쓰는 국책사업들이 널린 마당에 푼돈 줄이려 직접 번역했다는 이들의 애국심을 칭찬해야 하는 건지 헛웃음만 나온다.
무역협정은 발효 후 법률과 같은 효력을 지니게 된다.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더라면 오역투성이의 엉터리 법전을 가지게 될 뻔했다. 이 정도면 번역을 반역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 오역도 오역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오역을 받아들이는 당국자들의 태도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협정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사소한 사안”이라고 강변했다.
일류와 이류를 가르는 차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당국자들이 사소하다고 주장하는 그 문제, 즉 디테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세심하게 다루느냐가 일류와 이류를 구분시켜 준다. 1980년 대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한국 상품들이 미국에 쏟아져 들어왔을 때 한인들은 애국심에서 한국산을 구입해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디자인과 성능 등이 다른 선진국 제품들과 비슷하기는 한데 어딘가 뒤떨어지는 것 같다는 미진함을 떨치기 힘들었다. 2% 부족한 듯한 그 느낌은 바로 디테일의 결여였다. 기업들이 이를 보완하고 개선하는데 힘을 쏟은 결과 이제 한국제품들은 일류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몇 년 전 한국의 한 재벌총수는 “기업은 일류, 정부는 이류”라고 비판했다가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이 비판을 재벌의 건방으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속도를 추구하는 압축성장의 와중에서 ‘적당주의’가 만연하자 원자바오 중국총리는 관료들을 향해 이런 쓴 소리를 던졌다. “중국에는 13억의 인구가 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13억을 곱하면 큰 문제가 돼 버린다.” 모두가 새겨 들여야 할 고언이다.
성실하게 하면 일을 완수할 수 있다. 그러나 잘 해내려면 섬세해야 한다. 이번 오역사태에서 드러났듯 디테일을 우습게 여기는 한국정부는 아직 일류가 아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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