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피로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전혀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가능해졌다. 철옹성 같던, 그래서 천년만년 갈 것 같던 독재체제들이 잇달아 무너졌다. 세계가 흥분했다. 튀니지에서 일기 시작한 그 재스민혁명의 끝은 과여 어디일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아랍 민주화 대행진이 펼쳐진지 3개월. 그러나 혁명 피로감이 만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유를,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이 벌써부터 식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혁명의 발상지 북아프리카?중동과는 정 반대의 곳. 아시아란 거대한 대륙괴(大陸塊)너머의 땅에서는 그러나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그 재스민혁명에 대해 점차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재스민’이란 말조차 쓸 수 없다. ‘혁명’이라는 말도 그렇다. ‘내일’이란 단어가 인터넷에 떠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혹시 ‘내일 모이자‘는 구호가 아닐까 지레 놀라서다.
거기다가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불어 닥쳤다. 그 시작은 두 달 여 전 튀니지에서 혁명의 불길이 당겨졌을 때부터였다. 어느 날 사람들은 하나 둘 사라졌다. 인권변호사, 작가. 블로거, 예술가 등 ‘중국의 양심’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난 주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전위 예술가이자 인권운동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도 사라졌다. 한낮 공항에서 출국이 저지된 후 그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북경당국은 그의 구금 이유를 경제범죄혐의라고 밝혔다.
인터넷 차단에서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국내 치안체제 강화, 그리고 초법적인 강경조치 발동에 이르기까지 북경당국은 조직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조화사회’라고 했던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편집광적이랄 정도의 강경 대처에 나선 것이다.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가 ‘12차 5개년 경제계획(12-5 규획)’청사진을 발표하면서 ‘사회관리’를 최우선 정책으로 제시한 것도 그렇다. 과거에 5개년계획을 발표할 때 온 초점은 말 그대로 경제에 맞추어 있었다. 2011~2015년 계획은 그러나 민중 통제에 주안점이 주어졌다.
12-5 규획에는 ‘공공안전체제 강화’란 항목이 신설됐다. 급증하는 반정부 집단행동에 칼을 빼들겠다는 선언으로, 이를 위해 치안예산이 대폭 증액됐다. 책정된 예산은 모두 951억8000만 달러로 전년에 비해 35억여 달러가 늘었고 공식적인 국방예산을 크게 웃돌았다.
말하자면 북경당국은 ‘외부의 적’ 보다 ‘내부의 적’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왜 중국 공산당 집권세력은 그토록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일까. 30년 가까이 두 자리 숫자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제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려진다. 그런데 왜.
“일본은 단층 위에 세워진 나라로 끊임없이 지진 위협을 받고 있다면 중국은 화산 위에 세워진 나라로 폭발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포린 폴리시의 데이빗 로스코프의 지적이다. 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그토록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진단이다.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서 온갖 죄악이 잉태되고 또 독버섯처럼 번져나갔다. 부정부패에, 환경파괴, 불신풍조 만연, 심화되는 빈부격차 그리고 가중되는 인플레 등등. 그에 대한 분노가 쌓여만 간다. 분노가 자칫 활화산처럼 폭발할 기세다.
특히 인민대중을 분노케 하고 있는 것은 만연한 부패와 공산당원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그 단적인 예는 소위 ‘눈먼 돈’-다시 말해 중국의 음성소득의 규모에서 찾아진다.
크레딧 스위스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보고되지 않은 소득의 총계는 전체 국내 총생산의 30%에 이르는 1조4000억 달러 규모인 것으로 산출됐다. 이 ‘눈먼 돈’의 거의 다를 그런데 상위 10% 소득계층이 주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50여만을 헤아리는 백만장자, 200명에 이르는 억만장자는 인민대중의 눈에는 부정부패의 화신으로 비쳐진다. 정상적 방법으로는 짧은 세월에 그토록 많은 부를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패수준은 단지 계약 성사를 위해 뇌물을 주는 정도가 아니다. 관리와 업자의 결탁으로 수많은 인민대중의 생존권이 박탈될 정도다, 골프장 설립 등 온갖 개발을 명목으로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사람들만 수천만이어서 하는 말이다.
부정부패는 또한 식품안전에서 의료시스템까지 전 공중보건은 물론 교육체계까지 와해시키고 있다. 당연히 늘고 있는 것이 거리소요다. 지난해의 경우에만 10만 건(비공식 집계로는 20만 건) 이상의 반정부 집단시위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됐다.
문제는 공산당 지도부의 대응방식이다. 생존권 보호를 요구하는 대중의 청원에 귀막아왔다. 개혁을 요구하는 양심의 소리에는 폭력으로만 대응해왔다. 천안문사태에서, 티베트사태,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투옥에 이르기까지.
이 중국을 일부 전문가들은 화약고에 비유한다. 처재지변이든, 경기둔화든,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폭발할 수 있는 그런 사회라는 것이다.
‘10억이 훨씬 넘는 인민대중의 원성을 방치한 채 과연 언제까지 그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또 한 차례 반체제인사 검거선풍이 일고 있는 중국, 그 중국에 던져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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