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는 출범 후 줄곧 국민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 ‘불통’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사전 질문이 아닌 즉석 질문을 받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뉴스가 되는 선진 민주국가는 한국 밖에 없다.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사안들에 진솔하게 입장을 밝히고 대화하기보다는 자기 입장만 일방적으로 알리려 든다. 이 같은 행태에 대해 황제 의식이 엿보인다고 꼬집는 소리도 들린다.
고집스런 불통의 근저에는 여론조사에서 그런대로 괜찮게 나오는 지지율에 대한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 청와대가 밝히는 대통령 지지율은 40%대 후반이다. 그런데 이 지지율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다.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가구들을 상대로 실시된 조사 결과이기 때문이다. 집 전화번호는 여론조사와 관련한 대표성에 한계를 지니고 있다.
193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공화당의 알프레드 랜던이 맞붙었다. 집 전화번호를 이용해 여론조사를 해보니 랜던이 무난히 당선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루스벨트의 압승이었다. 당시 집에 전화를 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력을 가진 보수층 사람들이었던 까닭이다. 표본추출에서 편향성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요즘은 정반대의 이유로 집 전화 여론조사의 편향성이 문제가 된다. 한국에서 집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가구는 전체의 37%에 불과하다. 번호부에 이름을 등재하고 집에서 전화를 받아 응답하는 사람들 가운데 보수성향의 고연령 층과 저학력 층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은 새삼스런 사실이 아니다. 그러니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지지율 조사가 전체를 대표하기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그래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지율의 10%포인트 정도는 거품으로 본다.
설사 지지율이 50%라고 하더라도 항상 몸을 낮추고 조심스럽게 꾸려나가야 하는 것이 국정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거품투성이의 지지율에 기대서 소통을 등한시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모여 서로 잘한다고 추켜세우면서 환호하고 박수치는 ‘극장정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같은 소통의 거부 혹은 무시는 대통령의 정치 혐오증에서 비롯된 것 같다. 기업인 출신인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앞세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합리적인 실용이라기보다는 결과 지상주의에 가깝다. 인내와 양보가 필요한 설득의 가치보다 빠른 성과를 우선시 한다. 과정을 생략하려 들다보니 정치는 실종되고 소통은 막혀 버리게 된다.
올바른 정치는 신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당장은 귀찮게 여겨질지라도 이런 과정을 거쳐 이끌어 내는 결과여야 든든한 토대에 지은 집처럼 흔들리지 않게 된다. 콧수염에 담배를 피워 문 다감한 모습이 트레이드마크인 극작가 출신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은 2003년 퇴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의 목표는 단순하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존경을 증진하는 것이다.” 명료함을 넘어 문학적 아름다움까지 배어나는 정치에 관한 정의다.
우리는 과연 지난 몇 년 사이 정치를 통해 얼마나 서로에 대한 존경을 증진해 왔는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에 대한 존경을 중심에 둔 정치를 수행해야 할 가장 중심적인 자리에 정치 거부감을 가진 인물을 앉혔으니 제대로 된 정치가 이뤄질리 만무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굽듯 해야 한다고 노자는 말했다. 그만큼 세심함과 조심스러움이 뒤따라야 한다는 촌철살인의 비유이다. 하지만 우리가 봐 온 것은 생선을 마구 던지고 뒤집어 대는 철판요리사의 묘기였다. 보기에는 현란할지 몰라도 작은 생선은 온전히 남아나지 않는다.
공약 백지화가 국익을 고려한 고뇌어린 결단이라고 해서 사익을 위해 공약을 무분별하게 남발한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정말 살맛나는 나라가 되기 위해 시급한 것은 별 영양가 없는 외형적 성장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놓는 제대로 된 정치의 복원이다. 그리고 이것을 고민할 줄 아는 철학과 식견을 가진 인물을 고르는 일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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