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다. 잠시 심호흡을 해본다. 그리고 묵은 캘린더를 뒤적인다. 1월. 2월. 3월. 불과 석 달이 지났다. 그런데 꽤나 긴 세월의 터널을 통과한 느낌이다. 10년에 한 번 있을까, 아니 100년에 한번 있을까 싶은 엄청난 변화를 목도하고 있는 탓인가.
튀니지에서 시작됐다. 그 아랍민주화의 불꽃이 전 중동지역으로 번지면서 미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리비아에서도 전쟁에 돌입했다. 그 와중에 발생한 게 일본 대지진이다. 말 그대로 지각판이 흔들리는 대변화다. 새삼 역사란 말이 되새겨진다.
역사란 참정권의 확산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인권 신장이 역사의 흐름이란 이야기다. 민주화를 그러므로 인류사의 필연으로 보는 게 그 일반적인 견해다.
반대의 시각도 있다. 역사란 인간이 저지른 우매함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로, 폭압과 살육의 광기가 지배해온 게 인류사란 견해다.
관련해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2011년을 훗날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뭐랄까 갈림길에 섰다고 할까, 3개월째 맞는 재스민 혁명이 분수령을 맞은 느낌이다. 그래서 나오는 질문이다.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안도와 함께 기대도 높았다. 민주화의 그 스피드가 우선 그랬다. 불과 한두 달 사이 철옹성 같던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정권이 잇달아 무너졌다.
그 혁명대열을 이끈 것은 새로운 젊은 세대다. 그들의 관심은 내세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현세에서의 행복이다. 자유를, 정당한 일자리를, 그리고 존중받기를 원했다. 이 점에서 자살폭탄을 짊어진 이슬람이스트와 달랐다. 이런 젊은 세대가 새로운 혁명의 주역으로 등장한 데 대해 서방은 안도했다. 그리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 민주화의 속도가 둔화됐다. 거기다가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색채가 점차 가미되고 있다. 그러면서 재스민 혁명의 끝은 과연 어디가 될지 회의감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회교도와 기독교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다. 종교를 떠나 같은 이집트 국민으로 혁명의 대열에 참가했다. 그러나 이 후 상황은 달라져간다. 공공연한 기독교 박해가 따른다. 동시에 표면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무슬림형제단 같은 근본주의 이슬람이스트 세력이다.
리비아 반군도 그렇다. 한 때 알카에다와 연합전선을 구축했었다. 서방에 대한 테러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근본주의 무력집단도 카다피 타도 전선에 합류했다.
걸프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 복잡하다. 계속되는 거리 시위는 더 이상 독재체제와 민주세력의 대결이 아니다. 종파간의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 케이스를 보자. 억압의 주체인 정권은 시아파 중에서도 소수파다. 그 시아파 소수 정권의 폭정에 저항해 다수인 수니파가 들고 일어섰다.
바레인의 경우는 정반대다. 폭정의 주체는 소수인 수니파 왕정이다. 다수인 시아파가 왕정 타도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바레인은 인구래야 120만에 불과한 중동의 작은 섬나라다. 그러나 관계당사국들의 가장 첨예한 이해가 걸린 국가다. 이슬람의 양 대 세력인 수니파와 시아파를 가르는 단층지대에 있는 것이 바레인이다. 이 바레인에는 미5함대기지가 있다. 그리고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는 그야말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그 바레인의 소요사태가 점차 격화되자 사우디는 무력개입에 나섰다. 재스민 혁명의 꿈은 사라지고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분쟁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더 심각하게 하는 것은 이란의 개입 가능성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란은 같은 시아파 형제국인 바레인을 자국영토로 간주해왔다. 그런 정황에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가 바레인에 시위진압군을 파견 했다. 그 바레인에서의 시위대 학살 사태를 이란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이렇다. 폭정에 저항하는 민주화 요구 시위로 시작됐다. 그 재스민 혁명에 이슬람이란 종교색이 진하게 가미되면서 점차 해 묵은 수니와 시아파 간의 종파분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종파분쟁이 자칫 국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국가 연합과 이란이 그 선봉에 선 시아파 국가들과의 국제전쟁으로 확산될 기미마저 보이고 있어 하는 말이다.
“… 그 경우 지난 3년간 세계가 맞이했던 경제 불황은 대파국의 전주곡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일본 대지진에서 보듯이 원자력보다는 중동석유에 여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 국제경제체제와 관련해 한 국제경제 전문가가 내린 경고다.
‘2011년을 훗날은 어떻게 기억할까’-. 재차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대폭발의 해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혁명이지만 민주화는 인류사의 필연이라는 믿음에서다. 재스민 혁명이 민주혁명으로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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