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3월의 광란’이란 표현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금년도 미 대학농구 토너먼트에서 듣도 보도 못하던 팀이 4강에 오르는 등 이변이 이어지고 있다. 농구 전문가들과 농구에 일가견이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4강 후보로 꼽았던 전통의 강호들은 전부 탈락했다.
특히 11번 시드의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VCU)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1번 시드의 캔사스까지 격침시키고 파이널 4에 오른 것은 토너먼트 사상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VCU를 4강 후보로 꼽았던 농구팬들은 없었다. 토너먼트를 시작할 때 전문가들이 예상한 VCU 우승 확률은 350분의1이었다. 라스베가스 도박사들의 전망은 더욱 박해 이들은 VCU의 4강 확률을 1,371분의1로 내다봤다.
그런 VCU가 4강까지 진출하면서 농구팬들은 열광하고 있다. 준결승에서 이 학교와 맞붙는 버틀러 역시 8번 시드로 언더독이다. 버틀러는 파죽지세로 4강에 올라 지난해의 결승 진출이 반짝 행운만은 아니었음을 코트에서 증명하고 있다. VCU가 됐든 버틀러가 됐든 언더독 가운데 한 팀은 다음 주 열리는 결승에 진출하게 됐다. 그래서 팬들은 즐겁고 TV 시청률은 올라가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약자가 거의 모든 경우 패하게 돼 있다. 불공평하다고 느끼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그런데 스포츠에서는 약자가 강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간혹 일어난다. 이런 승부를 보면서 사람들은 쾌감을 맛본다. 반전과 이변의 짜릿함이다. 신데델라 스토리가 영원한 고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항상 꿈꾸는 반전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약자에게로 기우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미국인들을 상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응답자들에게는 현 중동 상황에 대한 에세이와 함께 참고 자료로 지도를 배포했다. 절반에게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더 크게 표기한 지도를, 그리고 다른 절반에게는 이스라엘 영토를 더 크게 그린 지도를 나눠줬다. 그랬더니 팔레스타인 땅을 더 크게 그린 지도를 받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이스라엘 땅을 더 크게 나타낸 지도를 받은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에 한층 더 우호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에세이의 내용은 변수가 되지 않았다. 단지 작은 나라에 대한 연민이 호감도를 좌우했다. 약자를 바라 볼 때면 공정함과 정의에 대한 의식이 자극을 받는 것 같다는 게 연구진이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포츠에서 약팀을 응원하게 되고 언더독이 우뚝 서는 스토리에 더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토너먼트는 이런 본능을 역대 어느 대회보다도 강렬하게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토너먼트 선정위원회가 1위에서 64위까지의 팀을 초청하는 기계적인 형평을 적용했다면 VCU는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원회는 정규시즌 동안 언론보도와 중계에서 소외된 군소 컨퍼런스 팀들에게도 대학농구 최대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VCU는 이번 대회 초청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가 막차로 합류한 팀이다.
VCU 같은 대학들이 초청받으면서 성적이 괜찮은 큰 대학들이 제외돼 볼멘소리도 들리지만 위원회의 방침은 확고하다. 기회의 균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퍼머티브 액션’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한국에 정의 신드롬을 몰고 온 마이클 샌델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이 소수민족을 고려하는 것은 누구의 권리도 침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어떤 기준으로도 인정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이란 없기 때문”이라는 법 철학자 로널드 드위킨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것을 토너먼트에 적용해 본다면 “어느 대학을 초청하건 그것은 선정위원회의 몫일 뿐 누구도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는 말로 바꿔볼 수 있을 것 같다.
경쟁과 성적을 만능으로 받드는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날로 찾아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대학농구 토너먼트에서는 아직도 신데렐라가 심심치 않게 탄생한다. VCU의 선전을 지켜보면서 스포츠 차원을 넘어 왜 약자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와 제도가 필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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