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의 신영복 교수가 쓴 책 ‘강의’에서 읽은 내용이 요즘 생각난다. 한 사회의 ‘집단적 타락 증후군’을 설명하면서 양념 삼아 소개한 교통위반 티켓 이야기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누구나 때로 과속으로 혹은 신호위반으로 티켓을 받는다. 그런데 이때 티켓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운전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억울해 한다. 위반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들 위반하는 데 왜 나만…"하는 생각 때문이다.
신 교수는 그런 상황에서 교통순경이 말한 ‘명답’ 우스갯소리를 전했다. 적발당한 운전자가 ‘다른 위반 차량들은 왜 그대로 두느냐’고 항의하자 순경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어부가 바닷고기를 다 잡을 수 있나요?”
잡히는 것만 잡을 뿐 - 그러니 티켓은 법을 어겨서라기보다 재수가 없어서 받는 것이라는 말이다.
위법 내용이 교통법규 정도라면 애교로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의 근본 원칙과 정의를 흔드는 위법이 만연하다면 “왜 나만 …”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힘 있고 돈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하는 사회, 아무도 원칙을 안 지키는 데 혼자만 지킨다면 그건 바보 … 식의 분위기가 팽배하다면 이는 ‘집단적 타락 증후군’의 사회라는 것이다.
그런 사회일수록 두드러지는 현상이 있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질시이다. 그래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뜨던 유명인의 부정이나 추락에 사람들은 마음 아파하기보다 고소해하고 쾌감을 느낀다. 이번 주 한국에서 터진 ‘폭로 이벤트’가 바로 그렇다.
2007년 학력위조 사건으로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큐레이터 신정아(39)씨가 이번 주에 다시 한번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자전적 에세이라는 책 ‘4001’ 출간으로, 거창한 책 홍보 기자회견으로 원 없이 세상의 이목을 끌어들였다.
유부남 애인이던 전 청와대 정책실장, ‘도덕관념 제로’로 매도한 전직 총리, 치한 수준으로 묘사된 전직 일간지 기자 등 뭇 남성들과 얽힌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을 여봐란 듯 털어놓자 책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초판 5만부가 이틀 만에 다 팔렸다.
책의 내용이 어느 정도까지 진실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하지만 직접 관련자가 아닌 한 진실 여부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흥밋거리이기 때문이다. 미모의 여성이 벌거벗듯 자신의 치부를 다 드러내고, 난다 긴다 하는 점잖은 인사들이 도덕적으로 난도질당하니 그것으로 고소하고 짜릿한 것이다.
신씨는 왜 이런 책을 냈을까. 스스로를 조롱거리로 만들 수 있는 모험을 왜 선택했을까. 다시는 큐레이터로 일할 수 없을 테니 돈도 필요하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4년 전, 사생활이 무자비하게 까발려지고 도덕적으로 무참하게 낙인찍힌 데 대한 울분, 그때 말 한마디 못하고 당한 데 대한 복수심리가 아닐까 짐작된다.
대학중퇴 학력을 박사로 속이고 실세 인맥 동원해서 분에 넘치는 자리들을 누린 사실은 잊어버리고, ‘왜 나만…’ 하는 억울함이 고개를 들었음직하다.
한국에서는 요즘 오디션 열풍이 불고 있다. 가수 오디션에 고교생, 대학생은 물론 대여섯 살 어린아이들까지 몰려든다고 한다. 한류 스타들이 누리는 인기와 천문학적 수입, 화려한 생활을 보면서 너도 나도 스타가 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적성을 찾아 실력을 연마하다가 인기를 얻고 스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스타는 극소수에게만 허용되는 좁은 관문이다. 오디션이 사회적 트렌드가 될 정도로 다수가 몰려든다면 그런 사회는 문제가 있다. 성실하고 근면한 삶 보다는 한 순간에 뭔가를 잡아 보겠다는 한탕주의가 근저에 깔려 있다.
부나비처럼 성공만 쫓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에 너무 강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뜨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상관없다는 정서가 강하다.
신정아씨도 그들 부나비 중의 한사람이었을 것이다. 성공을 위해 편법을 쓰면 결국은 그 부당성이 자신을 찍고 만다. 이제 그는 수치심마저 잃어버린 가엾은 여성이 되었다.
우리 안의 모든 부나비들에게 노자는 말한다. “명성과 자기 자신 중 어느 것이 더욱 절실한가. 자기 자신과 재물 중 어느 쪽이 더 소중한가. 자기 자신의 분수를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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