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소닉 창립자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연히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몸까지 허약했다.
하지만 그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이것을 극복해 ‘경영의 신’이라 불리며 존경받는 최고의 기업인이 됐다. 말년에 그는 못 배우고 병약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이 자신에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와는 반대로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불우하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 런던에서 54세를 일기로 숨진 존 폴 게티 3세가 그랬다. 인류사에서 최초로 개인자산 10억달러를 넘어선 부호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개인적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할아버지 게티는 자녀들에게 도무지 사랑이라곤 베풀 줄 모르는 이상 성격자였다. 손자인 게티 3세를 납치한 마피아가 220만달러의 몸값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다 아들에게 연리 4%로 꿔주는 조건으로 마지못해 돈을 내 준 비정한 할아버지였다. 한마디로 돈 빼놓고는 아무 것도 없는 집안이었다. 언론들은 그의 죽음을 전하면서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삶이었다고 보도했다.
마치 유행가 제목 같은 이 교훈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자녀교육에 철저히 적용한 대표적인 부자는 이번 주 한국을 방문한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다. 버핏은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줬다. 재산을 남기지 않겠다고 분명히 하면서 아이들이 아버지 돈에 기대지 않고 자기들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 결과 버핏의 세 자녀는 아버지의 후광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교육이 얼마나 철저했던지 그의 딸과 사귀던 월스트릿 변호사는 결혼 직전까지 자기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그처럼 돈 많고 유명한 버핏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다. 부모의 돈 없이도 스스로 행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감정은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 버핏의 소신이었다.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거의 모든 동물들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먹이보다 자신이 직접 찾아서 먹는 먹이를 더 좋아하는 성향을 보인다. 아무 수고 없이 눈앞에 놓여진 먹이보다는 자신이 노력을 해 얻은 먹이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공짜로 주어진 것보다는 자기의 수고와 땀이 들어간 성취에 더 의미를 둔다는 말이다. 학자들은 프리로딩, 즉 공짜로 채워지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에서 이런 성향을 ‘콘트라프리로딩’(contrafree-loading)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인간의 경우는 어떨까. 요즘 한창 뜨는 행동경제학자인 듀크대학의 댄 애리얼리 교수는 콘트라프리로딩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해봤다. 그랬더니 인간들 역시 별 의미 없는 손쉬운 성취보다는, 작은 의미가 있는 어려운 성취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실험 결과는 그냥 앉아서 물려받는 많은 재산과 횡재가 왜 재난이 되곤 하는지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부모 재산에 대한 자녀들의 관심은 어느 문화권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 자녀들의 관심은 좀 더 유별나다. 얼마 전 나온 조사를 보니 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만이 유일하게 부모 수입이 상승할수록 자녀들의 방문빈도가 높아지는 국가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들은 오히려 반비례했다. 오죽하면 “재산 미리 주면 굶어 죽고, 반만 주면 시달려 죽고. 안주면 맞아 죽는다”는 섬뜩한 우스개까지 나올까 싶다.
가난과 풍요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축복이 되기도 하고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의미다. 버핏은 자녀들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의미를 찾는 방법을 가르쳤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 지금 내게 찾아 온 재앙이여! 그 속에 행운이 기다리고 있구나. 아, 나에게 찾아온 행복이여! 그 속에 재앙이 엎드려 있구나. 세상의 그 끝을 누가 알겠는가. 세상에 정답은 없도다.”
버핏은 바로 이 같은 이치를 깨달았다. 그는 자기 자녀들이 입에 물고 태어난 은수저가 자칫 삶을 찌르는 은장도가 될 수 있음을 보았다. 버핏을 ‘현인’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돈의 흐름을 읽는데 탁월한 투자가의 눈뿐 아니라 이처럼 돈에 드리워진 그림자까지 보는 철학자의 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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