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처음 지중해를 자기 집 앞마당처럼 누비고 다닌 민족은 페니키아 인들이다. 지금 레바논 지역을 거점으로 한 이들 민족은 뛰어난 항해술로 지중해 전역을 돌아다니며 무역을 해 먹고 살았는데 이들이 내다 판 물건 중 특히 인기가 있었던 것은 자주 빛 염료였다.
지중해에서 나오는 바다 달팽이 점액질을 원료로 해 만든 이 염료는 원래 붉은 색이 돌다 말리면 자주 빛이 되는데 오래 둬도 색이 바래지 않고 워낙 귀해 왕족이 아니면 살 수 없었다. 그 뒤 유럽에서는 자주 빛은 왕을 상징하는 색깔이 됐다. ‘페니키아’란 말의 어원도 ‘붉은 자주 빛’이란 뜻이고 이들이 살던 ‘가나안’도 역시 같은 의미라 한다.
페니키아 인들은 자주 빛 염료 외에도 인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알파벳의 발명이 그것이다. 이들이 쓰던 알파벳은 이집트의 상형 문자를 개조한 것이라 하는데 이것을 그리스 인들이 빌려 그리스 문자로 만들었고 이것은 또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 인들을 거쳐 로마자의 원형이 됐다. 그런 면에서 지금 유럽을 비롯한 로마 알파벳 문화권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페니키아 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페니키아 인들은 또 지중해 각지에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카르타고다. 페니키아 말로 ‘신 도시’를 뜻하는 카르타고는 한 때 지중해의 강자로 군림했으나 로마와의 3번에 걸친 전쟁에 패하면서 망하고 만다. 로마의 정치인 카토는 원로원에서 연설을 할 때마다 “카르타고는 망해야 한다”로 끝을 맺었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에 의해 연전연패를 당하며 수십만 군대를 잃지만 끝내 굴하지 않고 버텨내며 기원전 202년 카르타고 인근 자마에서 스키피오는 한니발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다. 싸움은 결국 의지가 강한 자가 이긴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카르타고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은 지금의 튀니지지만 옛날에는 이집트 서쪽 북아프리카 일대를 모두 리비아라 불렀다.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는 ‘세 도시’라는 뜻으로 이 역시 페니키아 인들이 세운 세 도시가 모체가 됐다.
지금 트리폴리를 비롯한 리비아 전역이 전쟁의 화염에 휩싸여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은 이집트로 옮겨 붙었다 리비아로 번졌다. 반군들이 독재자 카다피의 본산 트리폴리를 공격하면서 쉽게 끝날 것 같던 리비아 혁명은 카다피가 전투기와 탱크로 반격에 나서면서 오히려 반군들이 수세에 몰리게 됐다. 카다피 군이 세계의 관심이 일본 지진에 쏠린 틈을 타 반군들의 거점인 벵가지를 공격, 대량 학살이 일어날 것 같자 유엔은 부랴부랴 비행 금지 구역 설정안을 통과시키고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지난 주말 미사일과 폭격으로 리비아 방공망을 와해시켰다.
리비아 인민 봉기는 내전으로 변했다 국제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지만 전쟁 주체 세력이 어디인지 전쟁의 목표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발목을 잡혀 있는 미국은 억지로 참가하는 듯한 인상이고 오바마는 지상군 투입은 없을 것이며 카다피 축출이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괜히 발을 디뎠다가 미군 사상자가 많이 나오거나 전쟁이 장기화될 때, 혹은 반군이 승리하더라도 자중지란이 일어나거나 아프간처럼 반미로 돌아설 경우 그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7살에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카다피는 ‘중동의 미친 개’라는 별명답게 지난 42년간 테러와 대량 살육으로 날을 지샌 인물이다. 사귀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카다피의 친구들은 야만적인 기행으로 유명한 이디 아민을 비롯, 인종 학살로 이름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황제 보카사, ‘발칸의 도살자’ 유고의 밀로셰비치, 역시 집단 살육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에티오피아의 멩기스투 등 그야말로 흉악무도한 자들뿐이다.
다행히 친 카다피군의 병력은 다국적군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고 반군을 지원하는 것으로 지상군 파견은 대신할 수 있다. 만약 다국적군이 이번에 카다피를 제거하지 않고 한번 뽑은 칼을 다시 거둔다면 중동 민주화라는 역사적 기회를 놓치는 것은 물론이고 카다피는 두고두고 화근거리로 남을 것이다. 다국적군은 김정일에 버금가는 지구상의 순수한 악을 제거할 수 있는 호기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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