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종말이 온지 알았다. 건물들이 종이처럼 흔들리고… 순간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일본 대지진 참사 현장에서 들려온 일성이다.
땅이 찢어지고 도로가 무너졌다. 전기와 통신이 두절되면서 암흑천지가 됐다. 산더미 같은 쓰나미가 덮치면서 마을들이 통 채로 바다에 삼켜진다. 300명, 1000명. 아니…. 속속 보고되는 사망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시간, 시간 전해지는 현장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다. 그리고 대자연의 그 위력 앞에 전율과 함께 새삼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게 된다.
자연재해는 한 지역사회를, 때로는 한 국가사회를 멸망시킨다. 고대 크레타 문명의 운명이 그랬다. 가설이지만 고구려의 후예, 한민족의 나라로 알려진 발해(渤海)의 멸망도 자연재해에 의한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한 일본인 학자의 주장으로, 발해의 멸망은 백두산 폭발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서기870년에서 934년 사이 백두산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그 대폭발 뒤로 찾아온 게 이상기후이고 그 영향으로 발해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에 빠져든다. 그 상황에서 거란족의 침입을 받아 순식간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천재(天災)는 때로 한 국가사회를 멸망시킨다’-. 현대에도 통하는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한 국가사회를, 더 나아가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은 천재 보다는 인재(人災)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르메테아 셴은 그 원인을 주로 정치적인 데서 찾고 있다. ‘민주주의 부재, 혹은 민주주의 결여’의 정치구조가 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봄이다. 우수(雨水)경칩(驚蟄)도 지나 곧 춘분(春分)이다. 이렇게 봄만 되면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식량을 달라는 소리다. 10년도 넘게 북한은 봄만 되면 식량구걸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을 향해, 또 한국에다 대고 쌀 지원요청을 했다. 개발도상국, 그러니까 가난한 나라에게까지 손을 내밀었다. 도대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전방위 구걸외교에 나섰을까.
정작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상당수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북한주민 대다수는 장마당을 통해 어떻게든 식량을 구해 최소한 굶지는 않는다. 게다가 지난해 작황은 풍작이다. 그런데도 예년보다 더 적극적인 쌀 구걸 행각에 나섰다. 왜.
2012년, 그러니까 김일성출생 100주년을 대비한 것이 아닐까. 그 해는 이른바 ‘강성대국’ 완성의 해다. 그리고 3대 세습을 마무리 짓는 해다. 그에 대비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일부의 관측이다. 하여튼 뭔가 베풀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체제유지도 힘들 수 있다. 그 때 풀기 위해 쌀을 비축하고 있다는 거다.
잘못된 관측일 수도 있다. 못 먹어 영양실조에 두뇌에까지 손상을 입은 북한 어린이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건 그렇다고 치고 이 관측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전해주고 있다. 김정일 체제는 주민들 먹여 살리기를 아예 포기한 것 같다는 사실이다.
10년 넘어 계속해 식량구걸 행각에 나섰다는 것도 그렇다. 정부의 모든 예산집행, 투자의 최우선은 김정일 체제유지에 맞추어 있다. 그 다음이 핵으로 상징되는 선군정책이다. 그러니 하천이 범람해도 그대로 방치된다. 민둥산도 관심 밖이다.
그 결과는 가뭄과 홍수의 연속이다. 거기다가 개혁개방을 통한 영농기술 개발은 터부시된다. 체제에 위험하다는 이유다.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기아는 이런 면에서 자연재해가 아니다. 인재(人災)가 그 바로 그 원인이다.
식량부족뿐이 아니다. 고문에서, 처형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북한 주민들이 맞고 있는 고난은 바로 ‘민주주의부재 정치구조’- 다시 말해 수령절대주의란 체제로 귀결된다. 말하자면 그 체제 자체가 바로 재난인 것이다.
그 북한 당국이 요즘 몹시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백두산 폭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정권의 뿌리를 백두산 항일 혁명으로 내세워 왔다. 그러면서 김일성 가계를 ‘백두산 혈통’으로 불러왔다.
그 백두산이 폭발할 수도 있다는 소문만으로도 민심이 동요될 수 있다. 그래서 북한당국이 상당히 곤혹해하고 있는 것이다. 엉뚱하게도 자연재해로 체제가 무너질까 보아 전전긍긍 하는 모습이다.
미국이, 한국이, 전 세계가 적극 지원에 나섰다. 대지진과 사상 최악의 쓰나미 참사의 대재난을 당한 일본을 돕기 위해서다. 당연한 인류애의 발현이고 책임 있는 민주세계 구성원으로서 의무다. 뭔가 절망 가운데에서도 소망의 밝은 빛이 보이는 느낌이다.
천재(天災)보다 더 가혹한 것이 인재(人災)다. 무소불위의 지배욕만이 지배하는 그 ‘수령절대주의체제란 인재’에 매몰된 북한 주민에게 소망의 빛이 비추일 날은 언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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