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는데 1,000달러짜리 지폐가 땅에 떨어져있다면 우리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과거에는 1,000달러권이 발행·유통되었다.) 십중팔구는 집어들 것이다. 10달러도 아니고, 100달러도 아닌 1,000달러, 그것도 주인 없는 돈을 그냥 지나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만약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사무실로 가던 도중 그 돈을 보았다면 어떻게 할까? ‘그냥 가야 한다’가 정답이다. "그렇게 돈 많은 사람이 무슨?"하는 욕심의 문제나 "그건 남의 돈인데…"라는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걸음을 멈추고 몸을 구부려 돈을 집어 드는 4초 정도의 시간이 문제다.
게이츠의 자산이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던 10년쯤 전 어느 칼럼니스트가 내놓은 계산법이다. 마이크로 소프트가 창업된 1975년부터 25년 동안 게이츠가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하루 14시간씩 일했다고 가정하면 그가 벌어들인 돈은 시간당 100만 달러. 1초에 300달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1,000달러 줍자고 4초를 허비하면 200달러를 손해 보게 된다는 계산이다.
1995년부터 줄곧 ‘세계 최고부자’ 자리를 누려온 게이츠는 그의 부 자체로 종종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몇 백억 달러라는 돈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돈인지 보통사람들은 상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호사가들의 이런 저런 계산법을 보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예를 들어 그가 가진 돈을 모두 1달러짜리로 바꿔 쭉 이어놓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8-9번을 왕복할 만한 길이가 된다는 식이다. 그 돈을 누군가가 매일 쉬지 않고 하루 24시간 1초에 2장씩 펴놓는다면 거의 700년이 걸린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자산 560억 달러(2011년 포브스 자료 기준)인 그의 돈과 보통사람(자산 7만달러 정도)의 돈은 어떻게 비교될까? 보통사람에게 10만 달러는 80만배 더 부자인 게이츠로 보면 12센트 정도에 해당된다고 한다. 보통사람이 1,200달러짜리 비행기 티켓을 한 장 구입했을 때의 재정적 부담은 게이츠로 보면 비행기 자체를 6대쯤 사들이는 것과 맞먹는다고 한다.
’부의 세계’ 정상에서 요지부동이던 게이츠가 이제 산을 내려온다. 하산을 시작했다. 이번 주 포브스가 발표한 억만장자 순위에서 그는 지난해에 이어 연속 2위를 기록했다. 그를 누르고 최고부자가 된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은 지난 한해동안 재산을 205억 달러나 불려 자산이 740억 달러가 되었다. 그런데 게이츠는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자산을 불리는 대신 계속 덜어내 자선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그가 자선사업에 전념하겠다며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3년 전이었다. 이후 그는 온 정력과 시간, 돈을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쏟고 있다. 이미 부의 1/3 이상이 재단으로 들어갔고, 궁극적으로는 전 재산의 95% 이상을 기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의 관심은 두 분야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보건위생과 발전, 그리고 미국의 교육 개선이다.
그가 여러 경로로 한 말들을 참고하면 그의 이런 결정은 공평함과 상관이 있다. 현실에서 만인은 평등하지 않으며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통찰이다.
예를 들어 그가 미국이 아니라 아프리카 후진국에서 태어났다면, 시애틀의 부촌 레이크사이드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면 오늘의 자신이 가능했을까, 불우한 환경 때문에 잠재력을 키울 수 없는 아이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하는 지적들이다. 그러니 많은 것을 얻었을수록 그만큼 많이 나눌 의무가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모든 비범함은 아름다움이다.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있고, 그 비범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아웃라이어라고 구분한다. 모차르트나 피카소, 우사인 볼트 같은 인물들이다. 천재적 재능과 피나는 노력, 그리고 운(기회)이 비범의 기본조건이 된다.
게이츠 역시 그들 비범한 인물 중 하나이지만 그에게는 다른 아웃라이어들과 구분되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성공과 소유에 매이지 않고 훌훌 털어내는 영혼의 자유로움, 그 정신의 비범함이다. 그의 기부정신은 지금 미국사회에서 아름다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워렌 버핏과 함께 추진하는 ‘기부의 서약’ 캠페인에 이미 59명의 억만장자가 합류했다. 죽기 전에 가진 재산의 50%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서약이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화엄경)고 했다. 억만장자 순위에서 게이츠는 앞으로 3위, 4위, 10위 … 계속 밀려날 것이다. 밀려나는 만큼 그에게는 아름다운 삶의 훈장이 될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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