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의 위치가 뒤바뀌면 본말이 전도됐다고 한다. 본말이 전도되면 가치관과 질서가 허물어진다. 인간의 복지와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와 도구가 오히려 본질인 인간의 자리를 차지해 생기는 문제점을 꼽자면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거래를 원활히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 돈에 인간이 점차 종속돼 가는 것이 대표적이고 국가 체제와 이념 역시 그렇다. 본질은 왜소해지고 그 자리를 매개체가 차지한다.
공산주의 이론을 세운 칼 마르크스는 종교에서 이런 본말의 전도를 목격하고 그 위험과 폐해를 지적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위한 매개체로 교회와 성직자가 존재한다. 교회와 성직자는 매개체일 뿐 본질은 하나님이다. 본질이 매개체에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매개체가 본질을 밀어내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하나님의 자리를 교회와 성직자가 차지하고 정작 본질은 뒤로 밀려서 가려지는 모순을 마르크스는 통렬히 비판했다. 물론 그가 비판하려 했던 것은 교황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종교개혁기의 가톨릭이었지만 이것은 오늘날 다른 종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갈수록 본질과 매개체의 위치가 전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목회자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교인들은 목사와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곧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이라는 사고에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목회자의 잘못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목회자는 면책특권이라도 가진 듯 행동하기 일쑤다. 기형적이기까지 하다. 일부 초대형 교회에서는 목사 우상화 조짐까지 나타난다. 말 그대로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다른 문화권의 교회들과 타 종교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개신교가 가장 증오감을 드러내는 이슬람교의 경우 성직자가 없다. 이슬람은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어떠한 영적인 중간 매개체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예배할 때 앞에서 이를 이끄는 평신도가 있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을 ‘이맘’이라 부른다. 이 제도에 대한 찬반은 있겠지만 적어도 본질의 위치가 흔들리는 일만은 없다.
최근 한국의 대표적 개신교 단체인 한기총 회장선거는 돈 선거라는 양심고백이 나와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개신교 목회자들의 일탈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한번 선거에 수십억원의 돈이 오간다는 폭로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차제에 이런 단체는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기독교 윤리실천 운동에 앞장서 온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교회는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특히 개신교는 핍박을 받을 때 가장 순수해 진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의 지적처럼 현재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부조리들과 부패는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너무 배가 불러서 생기고 있는 현상이다.
‘성공한 목회자’가 아니면 수십억원이 드는 돈 선거에 나설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모두가 개인 돈일 리는 없고 결국 구제와 선교에 쓰여야 할 돈이 목사의 명예욕을 충족시키는데 사용되는 셈이다. 교회의 본질은 뒤로 밀어낸 채 그 자리를 명예욕과 과시욕에 사로잡힌 목회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겸허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마르크스는 본질과 매개체가 뒤바뀌면서 나타나는 모순은 개혁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필연적으로 멸망을 초래하게 된다며 이것을 ‘매개의 변증법’이라고 불렀다. 그가 주창한 공산주의도 이런 운명을 걸었다. 지금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 커지고, 그래서 성공한 듯 보이지만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행하라는 것이 가르침이거늘 목회에 조금 성공했다 싶으면 이름 내고 광내기에 혈안들이다. 이들에게 과연 나중에 받을 상급이 남아 있기나 한 것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한국교회에 가장 시급한 것은 본질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자신들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운동이다. 배고팠던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미래는 어둡다.
한국교회와 DNA가 99% 일치하는 미주 한인교회라고 해서 얼마나 다를까 싶다.
아직 물리적, 외형적으로 거기에 이르지 못해서일 뿐이지 똑같은 전철을 밟아 갈 유전적 소인은 너무나 넘쳐난다. 그러니 남의 일 보듯 말아야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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