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당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는 “주식시장은 이제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높은 고지에 올라섰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몇 주 후 주식시장은 곤두박질쳤으며 미국은 길고도 어두운 대공황의 터널에 들어섰다. 예일대 교수였던 어빙은 학자였지만 주식으로 큰돈을 번 성공적인 투자가이기도 했다. 학자로서 객관적이어야 할 분석에 투자가로서의 소망이 뒤섞여 버린 것이다. 많은 학문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실수로 어빙은 가장 불운한 경제학자로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그랬으면 하는 것’을 ‘실제 그런 것’으로 여기는 생각의 오류를 ‘위시풀 씽킹’(wishful thinking)이라고 한다. ‘위시풀 씽킹’에 빠지면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 실제로 그렇게 됐다고 예단하게 된다. “그것이 진실/거짓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실/거짓이다”라고 결론을 내려 버린다. 합리적인 추론과정과 제대로 된 확인은 생략되기 일쑤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결정에서 ‘위시풀 씽킹’이 작용해 심각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고 언론의 많은 오보도 이런 오류의 결과이다. 개인들의 인간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원하는 상황을 뒷받침해 준다 싶으면 확인되지 않은 가십과 루머들도 그럴듯하게 둔갑시켜 무책임하게, 그리고 무분별하게 유포시킨다. 머릿속에서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별다른 갈등이나 인지부조화도 없다.
최근 한국 언론들은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군부대 시찰 중 쌍안경을 거꾸로 들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사진과 함께 크게 내보냈다. 이 기사의 의도가 대장호칭을 받은 김정은이 사실은 쌍안경조차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엉터리라며 조롱하고 망신을 주려는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 언론이 이것을 내보내자 다른 언론들, 특히 보수매체들은 앞 다퉈 보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김정은이 제대로 쌍안경을 든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나오더니 워싱턴에 소재한 ‘자유 아시아방송’은 “김정은이 들고 있는 쌍안경은 특수한 것으로, 마치 거꾸로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올바르게 사용한 것”이라는 서방 쌍안경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첫 보도를 내보냈던 언론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백조하면 모두가 희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의 어떤 곳에는 검은 백조가 존재한다. 내가 모른다고, 혹은 본적이 없다고 통상적인 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쌍안경의 경우 모양과 작동법이 기존의 것들과 다른 제품이 있을 가능성은 검은 백조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세밀한 확인을 거쳤어야 했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경우가 있듯 쌍안경 보도는 ‘위시풀 씽킹’에 빠져 균형을 잃는 언론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의 퇴임을 앞두고 터져 나왔던 ‘봉하마을 초호화 아방궁’ 보도 역시 이런 범주의 왜곡이었다. 한 주간지가 보도한 내용을 평소 노무현 깎아 내리기에 혈안이 돼 있던 언론들은 “옳거니”하면서 무분별하게 퍼 날랐다. 사설까지 동원해 무차별 융단폭격을 가했다. 머지않아 이들의 보도내용은 대부분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랬으면 하는 것을 손쉽게 사실로 둔갑시키는 보도 태도는 특히 북한과 관련해 두드러진다. 구미에 맞는다 싶으면 여기저기 떠도는 출처 불명의 이야기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보낸다. 북한체제의 균열과 붕괴에 대한 열망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보도는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불필요한 혼란과 혼선을 초래한다.
언론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진실과 객관적 사실이다. 북한체제와 김정은이 엉터리라는 것은 일부 북한주민들만 빼곤 전 세계가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도 엉터리라는 것을 증명하고픈 욕구에 엉터리 보도를 내보내다 보면 나중에는 자기가 엉터리가 된다. 그러다보면 공익은 물론 국익까지 해칠 우려가 있다.
원하는 것을 사실로 둔갑시키는 맹점이 미디어만의 문제는 아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당신 역시 주위 상황과 인간을 왜곡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이 물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남의 얘기를 쓰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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