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하는 순간 ‘Mad Dog’이란 글자가 펼쳐진다. 포린 폴리시 인터넷 판의 제목이다. 눈빛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궁지에 몰린 모아마르 카다피의 모습이 클로즈업 돼 있다.
1986년 이었나. 레이건 대통령이 카다피를 ‘중동지역의 미친 개’라고 불렀던 것이. 상당한 논란이 따랐었다.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아랍의 자존심이다. 그런 카다피를 ‘미친 개’로 매도하다니. 제국주의적 발상에, 인종주의적 폭언이라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었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에 와서 볼 때 그 통찰이 놀랍다. 그 무렵 또 다른 논란이 제기되고 있었다. 친미성향의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좌파 전체주의 체제를 대하는 미국의 정책은 달라야 한다. 레이건이 표방한 정책이다. 그 정책이 과연 옳은가 하는 논란이었다.
우익 권위주의 독재체제는 민주체제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좌파 전체주의 체제가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때문에 당연히 접근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논리다. 인권정책의 이중기준 적용이다. 바로 뒤따른 비판이었다.
필리핀이, 한국이 민주화에 성공했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도 민주국가 대열에 동참했다. 하나 같이 군부, 혹은 우익독재 정권이 오랫동안 지배하던 나라들이다. 그 독재체제들이 ‘피플 파워’앞에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친미 성향의 권위주의 독재체제는 민주체제로 전이될 수 있다는 명제가 증명된 셈이다. 그 명제는 오늘날에도 통하는 것일까.
재스민 향기가 만발한 것 같았다. 두 달도 채 안 되는 사이에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체제가 가 ‘피플 파워 앞에 잇달아 무너져 내렸다.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대세 같았다. 그 민주화 대행진이 그러나 복병을 만났다.
지리적으로 튀니지, 이집트와 상당히 근접해 있다. 그런 리비아에서 민주화 시위 흐름은 거센 역류를 맞게 된 것이다.
외국인 용병까지 동원했다. 그리고는 국민을 대상으로 무차별 살상 전에 들어 간 것이다. 스나이퍼가 시위대를 저격한다. 전폭기가 폭격을 가한다. 무장 헬기가 기관총을 난사한다. 민주화 시위를 부족 간 내전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체제유지에 광분하고 있는 것이다.
재스민 혁명은 회교혁명정부 공화국 이란에서도 역류의 상황을 맞았다. 2009년 녹색혁명 이후 최대의 군중이 시위에 나섰다. 그 시위는 그러나 민병대의 무자비한 진압에 일단 무산됐다.
독재정권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이런 역류현상이 일고 있는가. 체제의 성격이 다르다는 게 그 답이 아닐까. 훨씬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다. 이집트에서 성공한 재스민 혁명이 왜 이란에서는 실패에 그쳤나. 이에 대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분석이다.
같은 회교권 독재자지만 무바라크 등 친미성향 독재자에게는 그런대로 양심이란 것이 있다. 군(軍)도 그렇다. 국민의, 시민의 군이지 독재 권력의 사병(私兵)은 아니다. 이란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회교혁명 정부를 떠받들고 있는 것은 이란 정규군이 아니다. 혁명수비대다.
그 수비대가 권력의 핵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회교 혁명정권 담당자들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드라도 체제를 유지한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거기에는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없다. 그 체제는 좌파 전체주의 모습에 가깝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규군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규군이 존재할 때 국가권력의 사유화는 힘들다. 때문에 고의적으로 군을 약화시키고 부족 단위로 군을 편성했다. 최강의 정예부대는 아들이 지휘한다. 카다피 리비아의 군 체제다.
그의 통치 41년은 테러와 반 서방 혁명, 대대적인 학살로 점철됐다. 그 카다피는 그리고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리비아를 창조한 유일한 존재가 바로 나다. 나는 동시에 리비아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카다피의 리비아는 단순한 권위주의 형 독재체제가 아니다. 광기가 지배하는 혈족중심의 전체주의 체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리비아에서는 계속해 피의 절규가 들려오고 있다. “모스크를 나서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이 가해졌다…. 트리폴리 그린 스퀘어를 향해 전진하는 시위대에게는 총탄이 우박같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와서 도와 달라는 리비아 여인의 외침이 트위터를 타고 전 세계에 전해진다.”
어떤 형태든 독재 권력은 결국 무너지게 돼 있다. 리비아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독재자는 그러나 최후까지 발악을 한다. 특히 권력세습을 통해 대대손손 영화를 누리려던 독재자들은 그 최후를 피로 벌겋게 물들이면서까지. 리비아 사태가 주는 또 다른 섬뜩한 메시지다.
문득 한 가지 광경이 떠올려진다. 머지않은 장래의 어느 시점이다. 아버지에서 아들, 그리고 손자로 이어지려던 그 체제가 무너진다. 민중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우상이 무너진다. 김일성이란 우상이다. 동시에 우려했던 상황이 전개된다. 대대적인 유혈상황이다. 그 악몽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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