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경제학자인 캠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가 자기 책에서 언급했듯 가전제품의 등장은 사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세탁기의 등장이 인터넷의 출현보다 더 큰 사회적 파장을 초래했다는 그의 주장까지 수긍하기는 힘들어도 가전제품이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을 가속화 시켜 세상을 바꾸었다는 논지는 부정할 수 없다. 세탁기, 다리미, 식기세척기 등 일상화 된 수많은 가전제품들은 과거 부잣집에서 하인 23명을 고용해야 가능했던 노동을 대체했다고 분석한 사회학자도 있다.
이런 변화는 남녀 간 격차 해소 과정을 넘어 이제는 일부 분야에서의 역전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내가 남편보다 많이 버는 맞벌이 가정이 벌써 30%를 넘어섰다. 이쯤 되면 아내가 남편보다 더 많이 버는 가정은 연하남과 연상녀의 결합만큼이나, 아니 이보다 더 흔한 일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가 항상 적응의 속도를 한참 앞선다는 데 있다.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하는 남성들도 있지만 보수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남성들은 적응에 애를 먹는다. 아내가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 없는 추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남편들은 이것을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이들에게 가정에서의 경제력은 곧 권력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변해가지만 남자가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은 의외로 뿌리가 깊다. 그래서 아내가 돈을 더 벌기 시작하면 남편들은 남성성에 위협을 느낀다. 이런 부부들을 상담한 정신과 의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내의 성공은 경제적 해방을 의미하는 것인데도 이것을 감정적인 문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는 것이다.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못난 남편이 된 듯한 자책감에 시달리고 심지어는 거세당했다고 느끼기까지 한다. 전통적인 성역할이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이런 감정은 가정의 불안요소가 된다.
지난 주 발표된 한 흥미로운 조사결과도 이런 진단을 뒷받침해 준다. 역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들을 추적해 보니 상을 받지 못한 여배우들보다 이혼 확률이 68%나 높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오스카의 저주’로 불려온 현상이 객관적인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남우주연상 수상자들의 경우는 비수상자와 차이가 없었다. 연구진은 “사회 규범상 남자는 여자보다 더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뿌리 깊어 아내가 크게 성공을 거두면 부부관계가 불편해지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 남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한인가정상담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남편들은 대상으로 한 그룹치료 시간에 아내의 경제력 우위에 불만과 불안을 털어놓는 남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갓 이민 온, 그래서 여성들의 크게 높아진 경제적 역할에 익숙한 젊은 세대보다 이민 온지 오래된 연령층에서 이런 감정적 불편함이 더 많이 발견된다.
불만은 마음의 병이 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또 불안은 오스카 여우주연상 배우들의 남편들이 흔히 그랬듯 외도 등 일탈로 표출된다. 아내 수입이 더 많은 가정의 남편들은 대등한 관계의 부부보다 거짓말을 다섯 배나 더 많이 한다는 조사결과도 이런 남편들의 불안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아내의 성공에 따른 위기의 책임을 남편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공평치 않다. ‘오스카의 저주’ 연구진은 파탄의 책임이 남편 혹은 아내, 아니면 둘 다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한다.
가정은 공동체이다. 권력을 놓고 다투는 정치판이 아니다. 부부가 된 후 이룬 재산의 소유권을 똑같이 인정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그런 만큼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 역시 결국 두 사람의 공동책임이다. 이것이 ‘오스카의 저주’를 살펴 본 연구진이 내린 결론이다.
공동체라는 인식만 놓지 않으면 아내가 조금 더 성공했다고 해서 질투하거나 왜소해지는 일은 피할 수 있다. 불만과 불안 때문에 ‘못된 남편’처럼굴다가는 ‘못난 남편’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내들 역시 수입이 많아질수록 남편에 대한 배려 또한 높아져야 한다는 조언을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건 그렇고 이번 일요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은 누가 받게 될까 궁금해진다. 상을 못 받는 여배우들에게 “대신 가정의 평화를 지킬 확률이 높아졌다”고 한다면 위로가 될 수 있으려나.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