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인들이 해냈다면 우리라고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이집트에서 들려 온 소리다. 그 소리가 요르단으로, 예멘으로, 바레인으로, 시리아로, 또 리비아로, 그리고 심지어 쿠르드족 자치구 이라크로 번지면서 하나의 혁명구호가 됐다.
그 혁명구호가 그린혁명이 다시 불붙고 있는 이란에서는 이렇게 변질돼 들려오고 있다. “아랍인들을 부러워하기는 처음이다.”
두 달도 안됐다. 재스민혁명의 불길이 번지기 시작한 게. 그 사이 두 개의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그 불길은 그리고 전 중동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아랍권이 맞은 2011년은 동구권의 1989년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유럽의 1848년에 비교될 수 있을까.
그 해에도 혁명의 불길은 1월부터 타올랐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나라에서 불이 먼저 당겨졌다. 그 혁명의 물결은 이어 그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중요한 나라로 번졌다. 권위주의 체제 집권세력과 군주들은 숨죽이며 혁명의 불길이 번져나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2011년의 아랍세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1848년 유럽이 맞았던 상황이다. 혁명이 촉발된 정황도 비슷하다. 경기불황에 식량 값은 치솟기만 했다. 그 가운데 권위주의 체제는 동맥경화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분노한 젊은이들이 마침내 거리로 나섰다. 때 마침 보급된 최초의 대중매체 신문은 혁명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됐다.
시실리에서 점화된 불길은 이탈리아 반도를 타고 북상해 프랑스 파리로 번졌다. 그 불길은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비엔나, 프라하, 부다페스트 등 전 유럽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프랑스에서는 2월 혁명으로 불리는 이 1848년 혁명은 그러나 불발로 그쳤다. 권위주의 세력의 반격에 혁명 대열은 무너졌다. 그 뒤로 찾아든 것은 민족주의 노선의 숨 막히는 전제주의체제다. 유럽의 본격적인 민족국가 권위주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한 번도 민주적인 정부 시스템을 가져 본적이 없다. 선거나 민주주의 정당 등 틀은 있었지만 그건 형식에 불과하다.” 현실주의자라고 할까, 비관론자라고 할까. 그런 사람들의 지적이다.
독재자가 쫓겨났다. 그렇다고 이집트가 민주국가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입장을 에둘러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결국 1848년 같이 혁명은 실패로 그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전망이다. 혁명의 불길이 잦아든 후 찾아오는 것은 그러면 무엇일까. 비관론자들에 따르면 이슬람이스트 신정주의체제 확산, 아니면 아랍 형 내셔널리즘의 팽배로 보고 있다.
맞는 전망일까. 아주 잘못된 진단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경험이 전혀 없다. 시민 사회의 개념도 없다. 거의 유일하다 시피 한 대안적인 정치세력은 이슬람이스트다.
“알라는 우리의 목표다. 선지자(마호메트)는 우리의 지도자다. 코란은 우리의 헌법이고 지하드는 우리의 방법이다. 알라를 위한 죽음은 가장 영광된 죽음이다.” 이집트의 유일한 야권 세력이랄 수 있는 무슬림 형제단의 강령으로, 바로 이 때문에 나오는 주장이다.
민주주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아랍권의 2011년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동구권의 1989년과 비교 될 수 있다. 낙관론자들의 주장이다. 그 주장은 ‘아랍 형 신인류탄생’을 근거로 하고 있다.
“아랍 인구의 60% 이상은 30세 이하의 젊은이들이다. 이 아랍의 젊은이들은 독재 권력의 탄압과 빈곤 속에 절망적인 하루하루를 영위해 나가고 있다. 알카에다, 무슬림 형제단 등으로 대표되는 이슬람이스트 과격세력만이 이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한 서방의 싱크 탱크가 분석한 아랍 젊은이들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재스민혁명은 그 분류가 잘못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슬람이스트 과격세력의 주장에 동조하는 젊은이들은 의외로 소수다. 새로운 IT기술에 친숙한 높은 교육수준의 젊은이들이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첫째 자유다. 둘째 일자리와 정당한 소득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은 존중받기를 원한다. 자유가 억압당하고 부정부패로 삶이 향상될 가능성이 없다는 데 좌절해왔다. 그리고 걸핏하면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는 공권력에 분노했다. 그들이 마침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아랍세계 사상 처음으로 이슬람이스트가 아닌, 그래서 세속적 열망이 충족되기를 원하는 건강한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섰고 그 혁명이 성공을 한 것이다. 이 ‘아랍 형 신인류’의 출현을 서방세계는 물론 아랍의 기성세력도 예견하지 못했다. 아니, 젊은 세대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의 힘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기 전 까지는.
재스민혁명은 그러면 전 아랍권의 민주화로 이어질까. 그 전망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답은 ‘예스’라는 생각이다. 미국은 서둘러 민주화 어젠다를 도입했다. 자유를 외치는 사람 편에 서겠다는 선언이다. 그 자유화 어젠다에 민주국가들이 속속 동참해오고 있다.
그리고 민주화는 인류사의 필연으로, 자유는 항상 예상을 뛰어넘고 전진해왔기 때문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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