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스스로가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은 중요하다. 그것은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고 주인 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아주 건강하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심리학자들이 행복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삶에 대한 통제감을 꼽고 있다.
봉급은 아주 많이 받지만 윗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보다는 돈은 적게 받더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는 조사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이렇듯 통제감은 우리가 만족감을 맛보며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감정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이것도 넘치면 문제가 된다. 통제감이 지나쳐 과잉 상태에 이르면 일종의 병이 된다. 오히려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어느 조직이나 보면 자기 혼자서 일을 다 하는 양 떠벌이고 자기가 없으면 조직이 안 돌아갈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이런 사람들은 ‘통제의 착각’에 빠져 있다고 보면 된다.
통제의 착각은 자신은 물론 주변 상황까지 자기가 모두 통제하고 있다고 여기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이것이 심해지다 보면 운이나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까지도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많다.
특히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통제의 착각 속에 빠지면 조직의 건강성을 해치게 된다. “내가 없으면 이 조직은 돌아가지 않는다”고 주문을 외우는 윗사람 앞에서 누가 입바른 말과 쓴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사람들일수록 사실은 “나 없이도 잘 굴러가는 것 아닐까”라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것들도 절대 권력과 결부된 통제의 착각이 초래하는 해악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장기집권을 하는 독재자들이 흔히 빠지게 되는 함정이 바로 이것이다. 장기집권은 권력의 달콤함을 이기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하지만 집권 기간이 길어지면 달콤함보다는 점차 통제의 착각이 작용한다.
이런 착각은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전지전능감으로 서서히 바뀐다. 마치 자기가 신이라도 된 듯한 느낌에 지배된다. 그러면서 “이 나라는 내가 없으면 안 되며 내가 권력을 놓는 순간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될 것” 같은 확신에 사로잡힌다. 이 단계에 이르면 달콤함이 좋아서가 아니라 걱정 때문에 권력을 놓지 못하게 된다.
박정희가 그랬다. “시해 당하기 전 한때 권력을 이양하는 문제를 고민했다”는
증언이 박정희 사후에 나오기도 했지만 그는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 역시 “내가 아니면 어떻게…”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박정희는 때를 놓침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만약 그가 생전에 권좌에서 내려 왔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후한 역사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주 권력을 내놓은 이집트의 무바라크도 자신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깊은 독선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무바라크는 마지막 순간에 권력을 던져 버림으로써 비참한 최후는 피할 수 있었다. 앞으로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일상에서 비일비재한 통제의 착각은 대개 망신살 정도로 끝나지만 권력자의 과잉 통제감은 국가적인 비극을 불러온다는데 문제가 있다. 아무리 순수한 권력자라 하더라도 권좌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착각에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통제감이 도를 넘어설 때 이를 통제할 시스템이 중요한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는 수백년에 걸친 시행착오와 피의 투쟁을 거쳐 이런 시스템을 확보했고 한국 역시 20여년 전 치열한 항쟁을 대가로 이것을 얻을 수 있었다. 민중혁명을 통해 중동 민주주의의 새날을 연 이집트는 지금 이런 역사의 발자취를 하나씩 뒤쫓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 없으면 절대 안 돼”라는 통제의 착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말은 단 하나, “당신 없이도 모든 것은 잘 굴러가고, 열에 아홉은 오히려 더 잘 돌아갈 것”이라는 경험론이다. 그러고 보면 권력자니 장삼이사니 구분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삶의 현명한 이치는 똑같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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