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재직 시절 조지 W. 부시는 말 때문에 많은 곤욕을 치렀다. 부시의 말은 표현이 거칠거나 문법에 맞지 않는 등 정제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생각을 세련된 어휘로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 면에서 그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부시는 자신이 대통령 재임 중 너무 호전적인 언사를 사용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들을 불러일으킨 것을 후회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지도자, 특히 국가지도자의 말은 단순한 의사 표현의 수단이 아니다. 그의 말은 곧 국가정책이자 메시지이다. 말 한마디에 국가의 명운까지 좌우될 수 있다. 말의 의미와 무게 있어서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그래서 성현들은 말에 관한 교훈을 들려주면서 특히 지도자들이 혀를 놀릴 때는 더 조심하고 가다듬을 것을 권면했다. 국가지도자의 말은 절제되고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의 어법에는 몇 가지 심각한 결함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말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지난주 TV를 통해 생중계된 신년좌담회에서 그는 시종 “나는…”이라는 주어를 사용해 구설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대선 중 사찰을 찾은 자리에서 “부처님 눈이 내 눈을 닮았다”고 말해 비슷한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부처님 눈과 내 눈이 닮았음을 표현할 경우 “내 눈이 부처님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런 표현 속에도 말하는 사람의 바탕에 깔린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자기중심적 어법은 너무 젊은 나이에 기업인으로 출세한 이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 시절 대기업 문화는 주로 높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윗사람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런 어법이 몸에 밴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말이 많아지고 그만큼 실수도 잦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과 대통령이 된 후 잦은 실언을 했다. 그의 실언은 ‘MB실언 ×종 세트’라는 식의 냉소적 유머로 만들어져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한두 번의 실언은 애교로 넘어간다 해도 계속 반복될 경우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한다.
그러나 지도자로서의 신뢰에 보다 결정적인 타격을 안기는 것은 식언이다. 리더의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일관성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이런 인식이 취약하다. 신년좌담회에서 충청지역에 약속했던 과학벨트를 사실상 백지화 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초래했다. 그러면서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무슨 말인들 못하느냐”는 뉘앙스의 발언을 덧붙였다. ‘식언’과 ‘실언’ 2종 세트를 한자리에서 선보인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개발독재 시대의 낡고 위험한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오는 21일은 ‘대통령의 날’이다. 2월에는 유독 훌륭한 미국 대통령들이 많이 탄생했다. 국부인 조지 워싱턴과 갈라진 나라를 하나 되게 한 링컨, 그리고 국민과 진정으로 교감할 줄 알았던 레이건이 2월생이다. 미국은 이들이 남긴 유산을 되돌아보자는 뜻에서 이달의 세 번째 월요일을 ‘대통령의 날’로 제정해 기리고 있다.
이 가운데 ‘위대한 소통자’로 불리는 레이건은 이 대통령에게 전범이 될 만하다. 전기 작가 루 캐넌은 “레이건의 위대한 점은 그가 미국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그의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며 레이건은 진심을 다해 국민들과 소통했다고 평전에 썼다. 그렇기에 그는 기성세대에 냉소적인 젊은이들까지 아우를 수 있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에게 배우 출신인 레이건이 지녔던 타고난 친근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또 목소리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지도자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어떤 목소리로 얼마나 많이 말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인류사에 남을 민주주의 헌사로 평가받는 게티스버그 연설을 한 링컨은 목소리가 허스키했다. 그리고 사투리도 심했다. 이 연설은 그가 게티스버그로 가는 열차 안에서 직접 쓴 250여 단어로 이뤄진 2분짜리 짧은 연설이다. 그는 자기의 언어로 말할 줄 아는 국가지도자였다. 진정한 소통을 이루는데 메시지의 길이와 목소리, 그리고 사투리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소통에 뛰어난 국가지도자는 국민들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참모들이 써주는 공허한 수사가 아닌 자기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2월의 대통령들이 바로 그랬다. 귀 기울여 듣고 대답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는 이 대통령은 이들로부터 좀 배워야 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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