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금리는 현재의 낮은 금리에 올라타 당장의 부담을 줄이는 데는 유용하다.
기준 금리가 낮으면 낮을수록 더 그렇다. 그러나 변동금리에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반면 고정금리는 변동금리보다 일시적인 부담은 크지만 계획적인 지출이 가능해 안정적이다.
되돌아보면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경제정책의 수장이란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 소비자들에게 변동금리를 부추기던 것이 불과 수년 전의 미국이었다. 앨런 그리스펀 연준 의장은 지난 2004년 전국신용조합협회 연설을 통해 “고정금리 모기지 대신 변동금리 모기지를 선택하면 수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잘못된 길을 가도록 인도했다는 명예스럽지 못한 명성을 얻었다.
그린스펀은 기준금리를 1%로 낮췄던 인물이다. 이런 기준 금리에 올라탄 변동 모기지가 도달하게 될 종착지는 딱 하나, 계속 늘어나는 페이먼트 뿐이다. 그런데도 그린스펀은 공공연하게 이처럼 위험한 조언을 하고 다녔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조언을 무작정 신뢰했다.
그린스펀을 비롯해 수많은 미국인들을 지배한 것은 낙관주의였다. 인생에서는 비관적인 사람보다 낙관적인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그러나 경제생활, 특히 투자를 할 경우에는 이런 낙관주의가 종종 실패를 부른다. 상황을 실제보다 더 낙관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집단으로 확산되면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금융 위기 발생 전 미국은 온 나라가 브레이크가 없는 낙관주의에 휩싸여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집값이 영원히 오를 것이라 철석같이 믿을 만큼 어리석다. 어떤 사람들은 집값 상승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 만큼 현명하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똑똑하기 때문에 거품이 빠지기 전에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면서 도박을 계속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스스로를 평균 이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거의 다 자기를 뛰어난 운전자라고 응답한다. 실제로 뛰어난 운전자 범주에 드는 사람은 10%에 불과한 데도 말이다. 이런 경향은 경제의 거품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기 때문에 빨리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지만 결국 덫에 걸린다.
경제를 심리학과 결합한 행동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 교수는 이것을 ‘낙관주의 편향’이라고 부른다. 낙관에 빠지면 생각은 균형을 잃고 기우뚱거리게 된다. 위기를 경고하는 회의론자의 목소리는 집단적인 광기에 묻혀 들리지 않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극에 달했던 200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학사원에 금융위기를 왜 예측하지 못했는지 물었다. 여왕의 ‘하문’에 학사원은 장문의 서한을 통해 “위기를 경고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환상에 빠져 실상을 외면했다”면서 “낙관적인 분위기가 지배할 때 사태의 진전을 억제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라고 아뢰었다. 지난 주 나온 연방의회의 금융위기 보고서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호황기에 위기의 조짐을 본 일부 경제학자들이 경고를 했다. 사태가 터지고 난 후 이들은 예언자인양 추앙받고 있지만 이들도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과 집단의 지나친 낙관주의가 비극의 단초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데는 국가의 역할이 막중하다. 부시 행정부 시절 소셜시큐리티를 민영화 해 주식에 투자하도록 허용하는 안이 추진되다가 무산됐다. 만약 이 안이 시행됐더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정부는 개인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이끌고 더 나은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터키를 비롯한 일부 나라들은 변동금리 모기지를 아예 불허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기는커녕 오히려 개인들이 위험한 결정을 하도록 부채질했다. 개인들이 이성을 잃을 때 정부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주 작은 위기의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금융 위기 후 정부는 규제에 나섰다. 하지만 반발에 부딪혀 형식적인 규제에 그치고 있다. 과연 지난 실수에서 제대로 배운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정부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새로운 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라는 경고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실패에 겸손해 지지 않으면 비극은 되풀이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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