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의 영국남성이 지난 며칠 화제가 되었다. 550만 파운드(약 850만 달러)의 로토에 당첨되었던 청년이 13년 만에 빈털터리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잭팟’이 ‘쪽박’으로 변한 인생역전 드라마인데, 요즘은 나라마다 주마다 로토가 성행하다 보니 비슷한 일들이 종종 가십거리가 된다.
경제가 어려워진 2~3년 전부터 주위에서 자주 듣는 말이 ‘로토만 당첨된다면 …’이다. 자영업자든 직장인이든 매달 나가야하는 경비는 정해져있는데 수입은 줄어드니, 이리 막고 저리 막는 곡예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로토만 …’ 하는 푸념이 나온다.
실제로 ‘로토 당첨’ 아니면 헤어날 길이 없게 재정적 상황이 막막한 경우도 많이 있다. 목을 조이는 돈 문제에서 해방되기 위해, 돈방석에 앉아 돈 한번 마음껏 써봤으면 하는 마음에 사람들은 없는 돈을 털어 로토를 산다. ‘로토’는 행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13년 전 행운을 잡았던 영국청년은 로렌스 캔들리시라는 공장 근로자였다. 29살 시골 청년이 ‘돈 벼락’을 맞고 ‘고생 끝 행복 시작’의 모험을 시작했다. 부모 형제 친척을 위해 한동네에 7채의 집을 사서 오순도순 모여 살았고, 몇 년 후에는 가족들을 모두 이끌고 스페인의 휴양지로 이주해 새로운 삶을 즐겼다. 2004년 그는 영국에서 60위의 부자로 꼽혔다.
그러던 그가 돈을 다 탕진하고 운영하던 술집과 집을 날리고 영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귀국길에 공항 갈 택시비가 없어서 돈을 빌려야 했을 정도로 무일푼이라고 한다.
그의 누이 역시 집을 날렸고 어머니도 곧 집을 차압당할 상황이며, 아버지는 2009년 목을 매어 자살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폭력배들이 그의 집과 누이의 자동차에 불을 지른 사건도 있었다. 세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두가 돈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라는 건 쉽게 짐작이 간다.
셍텍쥐페리가 쓴 아름다운 책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장미꽃을 애지중지하는 왕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을 때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 생기고, 그래서 소중하게 아끼는 일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돈도 마찬가지다. 장미꽃밭의 수많은 장미와 어린왕자의 장미가 같지 않듯이 로토로 얻은 돈과 땀 흘려 얻은 돈은 같지 않다. 오랜 시간 안 먹고 안 쓰며 모은 돈이라야 소중해서 아끼게 되는데 로토의 ‘돈 벼락’은 벼락일 뿐이다. 돈에 정서적 끈끈함이 담겨있지 않으니 물 쓰듯 쓰면서도 느낌이 없다.
로토에 당첨되면 대개 수순이 있다. 공돈인 줄 알고 가족·친지 그리고 사기꾼들이 사방에서 손 벌리고 몰려들고, 돈이 무한정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마구 돈을 뿌리고, 평소 그리던 대저택과 멋진 자동차를 사고, 전문 지식도 없이 여기저기 투자하고 … 빈털터리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뿐이 아니다. 갑자기 생긴 돈을 어찌할 줄 몰라 도박, 마약에 빠지고, 내 돈 네 돈 하다가 부부가 이혼하고, 심한 경우 형제가 유산 받을 욕심에 당첨자를 살해한 경우도 있었다. 사이좋게 잘 살던 사람들을 한순간에 원수로 만드는 것이 돈의 또 다른 위력이다.
불교설화 중에 쌍둥이 자매 이야기가 있다. 암야천과 실상천이라는 여신들이다. 어느날 예쁜 여인이 찾아와 하룻밤을 재워달라고 한다. 실상천이다. 집주인이 “누구시냐”고 물으니 여인은 재물, 부귀. 장수 같은 복을 갖다 주는 천신이라고 대답한다. 주인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반가이 맞아들인다.
그런데 곧 이어 추악한 생김새의 여인이 들어선다. 동생 암야천이다. 자신을 ‘재앙을 가져다주는 악신’이라고 소개하자 주인은 일언지하에 거절을 한다. 그러자 암야천이 말한다. “우리는 쌍둥이로 항상 붙어 다녀야 합니다. 그러니 천신이 있는 곳이면 나도 들어가야 합니다.”
행운과 재앙, 횡재와 횡액은 손에 손을 잡고 다닌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토’는 예방 가능한 첫 번째 횡액이 된다.
이런 시가 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 달팽이는 기어서 / 굼벵이는 굴렀는데 /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반칠환, ‘새해 첫 기적’>
각자 자기의 속도가 있다. 자기의 속도대로 갈 뿐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듯이 어려울수록 한걸음 한걸음 가자. 로토와 인연 없는 우리 모두의 행운을 음미하며.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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