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미국적인 것, 한국적인 것 그리고 루마니아적인 것!
‘가장 미국적인 것이 뭘까?’라고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청교도 정신, 미식축구, 맥도날드, 코카콜라, 자유의 여신상 등 여러 가지가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대답이 그리 간단치 않다. 그렇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김치, 불고기, 훈민정음, 한의 문화 등. 우리나라 민속학자들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무당, 굿 등과 관련된 한국의 무속신앙(巫俗信仰)이라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가장 루마니아적인 것은 뭘까? 라고 물어본다면... 어떤 사람은 드라큘라(Dracula)라고 말하겠지만 필자의 경우 ‘루마니아 장례식’이 떠오른다. 루마니아의 전통 장례식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리 많이 변형되지 않았을 뿐더러 다른 국가와는 사뭇 다른 루마니아적인 요소가 많이 내포되어 있어 루마니아 문화양식(文化樣式) 중 가장 루마니아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장례식과 관련한 루마니아 풍습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장례식은 죽은 사람을 저 세상으로 편안하게 보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루마니아 장례식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고인을 저세상으로 보내는 의식이라기보다는 루마니아인들 삶의 한 부분인 것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루마니아에만 있는 ‘즐거운 공동묘지(Merry Cemetery)’나 밤에 고인을 지키는 ‘경야풍습’ 그리고 고인(시체)에게 ‘마지막 키스’하는 장면 등은 루마니아만의 독특한 장례풍습이다.
루마니아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장례문화를 통해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아주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저 세상으로 가버리면 그동안 살면서 정들었던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을 더 이상 못 보기 때문에 마지막이기 때문에 이제는 끝이기 때문에 두려워한다고 한다. 하지만 루마니아인들은 죽어 저 세상에 가더라도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들이 항상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록 하늘나라로 가더라도 덜 외롭게 느끼는 것 같다. 실제로 죽음과 관련한 루마니아인들의 태도는 생각보다 의연하다.
루마니아 장례식 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촛불’이다. 저 세상으로 가는 어두운 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빛이 없으면 천국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에서 혼자 사는 나이 많은 독거노인들은 밤에도 불을 켜둔 채 잠을 잔다고 한다. 혹시라도 잠자는 도중에 죽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불을 켜 두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부카레스트(Bucharest) 시내에서 장례행렬이 지나갈 경우 택시를 비롯한 일반 자동차들이 전조등을 켜 길을 비쳐주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저 세상으로 가는 길에 빛을 환하게 비쳐주며 작별인사를 한다.
죽음과 관련해 루마니아인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어떻게 죽었느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루마니아인들은 죽기 전에 신부님을 불러 지은 죄를 고해하고 또 하느님께 용서를 구한다. 그런데 만약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갑자기 죽었을 경우, 촛불을 켜두지 않고 또 지은 죄를 고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 사람의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이런 종류의 영혼은, 마치 한국의 귀신처럼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채 영원히 구천(九泉)을 헤맨다는 믿음이 루마니아인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신부님은 장례의식을 치를 때 고인의 영혼이 천국으로 갈 수 있게끔 반드시 이런 사실을 언급해야만 한다.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은 자살한 경우인데, 루마니아인들은 그 사람의 영혼이 100% 악마에게 간다고 믿고 있다. 이런 경우 루마니아 신부님도 종교적인 의식을 거행하길 꺼린다고 한다. 하지만 고인을 매장하는 장례식에는 참석하여 고인의 넋을 기리는 기도 정도는 해준다고 한다.
고대부터 루마니아인들의 의식 속에는 ‘사람이 죽고 나면 자연의 한 부분이 된다’는 믿음이 존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고대부터 루마니아인들이 죽음을 장례식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혼인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죽음을 <모든 우주(宇宙)와의 혼인식(婚姻式)>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어린 양’을 의미하는, 루마니아의 “미오리짜(Mioriţa) 신화”에 잘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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