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한 명을 낳아 기르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몇 년 전 미 농무무가 계산한 액수를 보면 아이 한 명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드는 비용은 22만달러를 조금 넘는다. 비싼 대학 학비까지 댈 경우에는 30만달러에 육박한다.
한국도 형편은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아이 한 명을 낳아 대학졸업까지 키우는 데 드는 양육비는 2억6,000만원이라는 조사결과가 얼마 전 나왔다. 이것은 평균 수준으로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니 남의 집 아이보다 좀 더 특별나게 키우려면 훨씬 많은 돈이 든다. 명목상 액수로는 한국과 미국이 별 차이 없지만 소득수준을 고려해 볼 때는 한국의 양육비 부담이 훨씬 무겁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한국의 저출산율은 이미 심각한 단계를 넘어섰다. 한국의 출산율은 OECD 국가들 가운데 꼴찌다. 막대한 양육비용은 왜 이런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교육비 비중과 이혼율, 자살률은 가장 높고 저임금 노동자 비율, 근로시간, 노동유연성(해고 용이성)도 부끄러운 1위다.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이다. 정부는 틈나는 대로 이것을 자랑한다. 그러나 한국인의 행복도를 조사해 보면 50위권 밖이다. 성장을 했는데도 왜 행복은 그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것일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행복도가 ‘세계 최고의 경제’라는 수사가 머쓱할 정도로 낮은 것 역시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한국은 사회안전망으로 볼 때 OECD 국가들 가운데 꼴찌수준이다. 신자유주의에 매몰된 정권이 들어서고 승자독식 현상이 심화되면서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경쟁에서의 도태는 끝이라는 강박관념으로 다가온다. 길어진 수명에 비해 미래는 너무 불투명하다. 아이의 장래를 자신하지 못하니 출산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책 ‘인간의 마음’에서 “입신출세를 하려는 끊임없는 투쟁과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끊임없는 공포가 지속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야기한다”고 진단했다. 그가 들여다 본 것은 그나마 사회안전망이 어느 정도 갖춰진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었다. 그러니 한국사회의 불안감이 어떨지는 말할 나위도 없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다 보니 사람들은 악착스럽게 되고 사회는 살벌해 진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불안의 70%는 사회에 의해 야기되고 있다는 한 심리학자의 분석이 실감나게 와 닿는다. 정부는 “국민 여러분을 행복의 나라로 이끌겠다”고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을 살펴보면 두 가지 유형이다. 하나는 너무 못 살아서 사람들이 현세에 대한 기대를 접고 다음 세계에 소망을 거는 나라들이다.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가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넓게 드리워 줌으로써 국민들이 최소한의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는 복지국가들이다. 한국이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는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념에 따라, 그리고 정치인 개개인에 따라 진단과 처방은 제각각이지만 이제 복지담론은 대세다. 복지를 색깔론으로 덧칠하려는 구시대적 시도가 여전하지만 구성원들의 의식수준은 이런 것에 현혹되지 않을 만큼 높아졌다.
일부 기득권층은 복지논쟁을 못마땅해 하면서 “당신들,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여겨야 한다”고 주장질을 해댄다. 이들의 마인드셋은 프랑스 대혁명 때 빵을 달라는 군중들에게 “빵이 없으면 비스켓을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했던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의 철없음과 본질적으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나라가 개인들의 ‘실존적 고민’까지 해결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생존의 고민’은 어느 정도 대신 짊어져 줄 수 있다. 그런 나라의 국민들은 더 행복하고 덜 탐욕스럽다.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 나라의 국민들은 그리 게걸스럽게 탐욕을 추구하지 않는 것으로 가치관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복지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당장은 소모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과정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더 나은 국가, 더 행복한 나라로 나가기 위해 한번은 겪어야 할 ‘성장통’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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