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011년이 슬픔 속에 시작되었다.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신선했던 지난 주말 애리조나, 투산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하원의원이 지역구민들과 만나는 자리에 한 청년이 나타나 마구 총을 쏘아댔다. 6명이 사망하고 기퍼즈 의원은 기적적으로 회복 중이다. 누구도 예상 못하던 ‘날벼락’이었다.
이 비극적 사건은 두 가지 차원에서 슬픔을 준다. 1차적이고 직접적인 슬픔은 부당한 희생.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선량한 시민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었으며, 40세의 기퍼즈 의원은 뇌의 기능을 얼마나 회복할지 알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꺾였다. 격하고 날카로운 슬픔이다.
이어 사건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다른 차원의 슬픔이 찾아든다. 미국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을 드러내면서 이런 비극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또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슴 답답하고 둔중한 슬픔이다.
사회가 갈수록 불안하다. 정신질환자든 범죄자든 손만 뻗으면 구할 수 있는 총기, 증오를 여과 없이 마구잡이로 분출해내는 독설의 정치 풍토는 지난 한주 신물 나도록 지적되었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이다.
총이 아무리 널려 있다 한들, 정치권의 증오 부추기기가 아무리 심하다 한들 시민들의 심신이 건강하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폭발할 지 모를 성격장애자들이 날로 늘어나는 사회 환경이 문제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한 지인은 ‘모래알처럼 흩어진 삶’을 근본 원
인으로 꼽았다. 사회는 급변하고, 가정은 깨져버려 사람들이 마음 붙이고 의지할 데를 찾기가 어렵다. 저마다 사는 데 바빠서 이웃의 얼굴도 잘 모르고, 심지어는 한 가정 내에서도 따로따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가 실종되었어요. 의미 있는 관계들이 그만큼 줄어들었지요. 모두를 외롭게 만드는 환경입니다."
결과적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음지에서 분노만 키우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들, ‘외톨이 늑대’로 불리는 존재들이다. 2007년 버지니아 텍에서 총기를 난사한 조승희 씨, 2009년 텍사스 포트후드 군 기지에서 총기난사 사건을 벌인 군의관 니달 말릭 하산 소령이 대표적인 케이스이고 이번 투산 사건도 여기에 속한다.
22살의 용의자 제러드 러프너 역시 외톨이였다. 부모와도 가깝지 않고, 친구도 거의 없는 단절된 삶이었다. 고교 때부터 이상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커뮤니티 칼리지 재학 중에는 너무 행동이 이상해서 정학을 당했다. 같이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두려움을 호소하자 학교 측이 정신감정 받은 후 복학을 허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었다. 그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후 그는 점점 현실로부터 멀어져 혼자만의 망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청년의 머릿속에서 얼마나 지독한 지옥불이 이글거렸는지 이번 사건으로 그 일면이 드러난 셈이다.
신생아실에 가서 갓 태어난 아기들을 보면 하나같이 아름답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해서 세상의 어떤 것도 그 보다 아름답지는 못하다. 그 아름답던 아기 중 하나가 22년 만에 사람들을 무참하게 죽이는 ‘악마’로 변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일까.
가장 큰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본다. 사람은 타고난 천성과 부모의 양육으로 만들어지는 존재이다. 천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러프너의 경우, 부모도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웃과 교류 없이 고립된 삶을 살았고, 그의 아버지는 성격이 불같다고 한다.
동네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다 공이 그 집 마당으로 굴러가면 공을 달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정신질환 기질을 타고난 아이가 성장기에 부모로부터 상처받고, 전문적 치료도 받지 못해 상태가 극도로 악화된 케이스로 보인다.
부모로서 사회를 위해 한가지 의무는 다해야 하겠다. 자녀를 분노
에 찬 외톨이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처방은 충분한 사랑이다. 사랑 받고 자란 아이들은 망가지지 않는다. 복잡한 이 사회에서 정신건강을 지키는 비결은 가정의 행복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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