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유래된 이야기로 ‘낙타와 천막’ 이야기가 있다. 아랍의 한 상인이 대상의 일원으로 여행하던 중 야영을 하게 되었다. 사막의 밤은 몹시 추워서 천막을 단단히 쳐야 잠을 잘 수가 있다고 한다.
상인이 천막 안에서 잠을 청하는 데 낙타가 슬그머니 코를 들이 밀었다. 밖이 너무 추우니 제발 코끝만이라도 천막 안에 넣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상인이 이를 허락하자 잠시 후에는 낙타의 머리통 전체가 안으로 들어왔다. 상인이 마지못해 조금 안쪽으로 비켜주니 차츰 긴 목이 안으로 들어오고, 이어 앞발, 몸통, 뒷발까지 들어와 낙타가 천막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작은 빌미가 천막의 주인인 상인을 오히려 밖으로 밀려나게 만든 것이다. 낙타와 사막, 대상의 문화가 있는 중동에서는 주객전도의 비유로 이 이야기가 자주 쓰이는 모양이다.
같은 중동권인 유태인들에게도 주객전도의 비유가 있다. 탈무드는 죄악을 주인과 객에 비유한다. "죄악은 처음에는 손님처럼 겸손하지만 그대로 두면 주인행세를 한다" "죄악이란 처음엔 거미줄처럼 가늘지만 나중에는 배를 묶어두는 밧줄처럼 굵어진다"는 가르침들이다. 죄를 처음 지을 때는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며 조심스럽지만 몇번 반복하다 보면 죄가 몸에 익어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는 경고이다.
분명 내가 주인인데 내 의식과 행동을 내가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습관이다. 손님처럼 들어와 주인노릇 하는 죄도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이런 습관, 저런 습관을 존재의 천막 안으로 불러들이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선택이 아니라 습관에 떠밀려 사는 형국이 된다.
당장 오늘 하루의 삶을 짚어보아도 눈감고도 할 수 있는 습관적인 행동들이 많이 있다. 일반적으로 성인들은 행동의 절반 이상이 습관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새해 결심은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천막 청소’이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내 존재의 천막 안에 진을 친 나쁜 습관들을 내몰아 보려는 연례행사이다. 간이 위험 신호를 보내는 데도 퇴근시간만 되면 술 생각이 나고, 가족들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담배를 달고 살며, 더 이상 몸에 맞는 옷이 없는데도 계속 먹게 되는 … 나를 로봇처럼 조종하며 주인행세 하는 해묵은 습관들을 바꿔보려는 시도이다.
문제는 익숙함이다. 머리로는 ‘낙타’를 내쫓아야지 하면서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함께 한 세월이 길수록 ‘천막 안의 낙타’에 익숙해져서 그와 더불어 안락하다. 새해결심 2개월 성공률은 60%, 6개월 성공률은 1/4에 불과한 것은 이런 심리적 배경 때문이다. 익숙함 앞에 장사가 없다. ‘안락한 불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는 습관 바꾸기를 우주선 발사에 비유했다. 우주선은 발사 처음 몇 분간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수직으로 치솟는 첫 몇 마일을 비행하는 데 드는 에너지의 양이 그 후 며칠간 50만 마일을 궤도 비행하는 데 드는 에너지의 양 보다 많다고 한다. 중력이라는 강력한 힘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습관 바꾸기는 내면의 중력에 맞서는 행위라고 그는 말한다. 처음에 굉장한 노력이 요구되지만 일단 안정권에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새로운 삶이 열린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좋은 습관이 성공을 결정한다고 그는 믿는다.
’천막 안의 낙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익숙함에 밀려서 올해도 그대로 안고 살아야 할 것인가. 익숙함은 노화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매일 같은 일상을 되풀이 하면 뇌의 기능이 감퇴하면서 치매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왔다.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치매 예방책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뇌에 자극을 주면 뇌의 신경전달 회로가 새로 만들어지고 세포도 새로 생성된다고 한다.
옛 습관을 버릴 수 없다면 새 습관을 만드는 것이 해법이다. 금주 금연 하느라 스트레스 받는 대신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해 술 담배생각이 아예 안 나게 하는 식이다. 새해부터는 라디오 방송도, TV 방송도 새롭게 바꿔보고, 출퇴근 하는 길도 가끔은 바꿔보자. 습관에 떠밀리는 대신 삶의 주인으로서 선택하는 습관을 만들어보자. 그것이 ‘천막’을 되찾는 길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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