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을 구하라’-. 관심은 온통 김정일 체제의 핵전력에, 또 재래군사력에 쏠려 있었다. 천안함 사태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왔다. 북한 체제는 그리고도 계속해 섬뜩한 말만 쏟아내고 있었다.
긴장은 한껏 고조돼 있었다. 그러니 북한의 군사위협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상황에서 조나 골드버그가 LA 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다. 그가 이 기고를 통해 던진 질문은 북한주민들이 예컨대 희귀종인 판다 곰이었다면 전 세계가 그토록 고통을 받도록 방치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90년대 초 보스니아 회교주민을 대상으로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을 때 유럽은 딴 청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커멘터리지에 한 기고가 실렸다. 저자는 에드워드 러트워크로, 그는 보스니아주민들이 희귀종 돌고래였으면 세계가 그들이 학살되도록 놔두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동식물도 국경을 초월해 보호를 받는 세상이다. 그런 마당에 그것도 유럽의 뒷마당에서 인종청소가 벌어졌고 또 방치되고 있다. 그 아이러니를 고발하고 나섰던 것이다.
골드버그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음울한 단서를 달았다. 보스니아사태는 뒤늦게나마 서방이 개입함으로써 해결됐다. 그렇지만 북한주민의 참상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악(惡·evil)’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될 수 없다. 실패한 국가, 불량 국가 등으로 불린다. 본질은 그러나 어디까지나 수령절대주의의, 죽음의 폭정체제다. 그게 김정일 체제다.
이 체제의 특징은 공적·사적 영역 구분 없이 수령이 절대 권력을 휘둘러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가두고 싶으면 가두는 무소불위의 지배욕을 휘두르는 체제다. 그 체제하에서 북한주민은 노예에 다름없다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지배계층은 북한주민들을 노예로 담보 잡아 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권력세습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 무소불위의 권력을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또 그 아들이 누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압제에, 고문, 만연한 기아, 그리고 학살로 점철된 악의 시스템을 대대손손 이어가겠다는 것이 북한의 권력세습의 본모습이다.
이 북한체제의 본질을 서방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알고 있다. 그러나 모르는 체 하고 있다, 아니 알면서도 눈감아 왔다는 게 골드버그의 지적이다. 그러면서 인류의 양심에 호소하고 있다. 북한주민의 참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호소다.
한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미국 신안보센터(CNAS)라는 연구소는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핵전력까지 보유한 현 북한의 군사력에 못지않은 위협요소로 지적했다. 이는 다른 말이 아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보다도 체제붕괴가 어쩌면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보다 실제적인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3대세습의 무리수를 두고 있는 현 북한의 지배체제는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진단했다. 그 체제의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진단과 함께 전쟁억지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김정일 체제붕괴 후에 벌어질 사태에 대비한 한국군 체제개편도 시급하다는 게 CNAS보고서의 요지다.
이 보고서가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60년 가까이 지탱되어온 한반도의 ‘스테이터스 쿠오’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마디로 ‘악의 시스템’이 그동안 쌓아온 악의 업보(業報)결과다.
수백만 명을 굶겨죽이면서 벤츠에, 캐비아를 창고에 가득 쌓아 놓았다. 강제 수용소에서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앵벌이를 위해 온갖 포악(暴惡)질을 일삼는다. 그것도 모자라 핵 실험에, 군사도발을 저지르고 있다.
이미 갈 데 까지 갔다. 그 악의 체제가 스스로 쌓아온 악의 하중에 짓눌려 숨을 헐떡인다. 그 필연적 결과는 레짐 체인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김정일 체제 임계점’론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주민의 참상은 언제까지 방치될 것인가’-. 골드버그의 한탄은 그러면 한탄으로만 끝날까. 뭔가 희망의 조짐이 보인다. 핵도, 재래군사력도 아니다. 결국은 체제가 문제다. 그 악의 체제의 본질에 새삼 눈을 돌리면서 북한에 대한 접근법이 달라지고 있어서다.
‘현상유지’ ‘분단관리’에서 ‘현상타파’와 ‘한반도통일’쪽으로 북한정책이 바뀌고 있다. 주민을 인질로 잡고 툭하면 불장난이나 하는 악의 체제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미국에서 감지되는 게 바로 이런 움직임이다.
대통령은 통일과 외교 두 가지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북한주민은 품고 김정일과 그 사병(私兵)에 불과한 북한 군부는 적임을 분명히 했다. ‘햇볕’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난 한국의 공식 입장이다. 2011년은 북한주민 해방의 원년으로 훗날 기록되는 것은 아닐까.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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