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중동전이 발발하기 전 이스라엘에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전쟁체제에 돌입했다는 무수한 정보들이 접수됐다. 전쟁이 개시된 날 새벽에는 상대국에 침투해 있는 첩자들로부터 “오늘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정보를 건네주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별다른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집트와 시리아의 동원 움직임은 항상 있어 왔던 것이고 첩자들의 제보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적도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전쟁준비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다.
지나고 나서 보면 너무나 명확한 징후였는데도 그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심히 흘려보내는 바람에 큰 화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고도의 분석훈련을 받아 누구보다도 냉철한 정보요원들도 이런 인식의 함정에 자주 빠진다.
정보실패에는 어느 정도의 불가피성이 있다. 정보에 최대한 민감하게 반응을 하면 기습공격을 당할 위험은 줄어들지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반응하다 보면 오경보가 많이 발생하게 되고 자연스레 정보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게 된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이전 수차례의 공격정보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민감도가 한참 떨어져 있을 때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9.11테러는 정보실패와 관련한 최악의 사례 가운데 하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테러 이전에 미국의 정부당국은 테러모의와 관련된 상당한 정보를 축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테러를 예측하고 예방하는데 실패했다.
참사 후 3년간 진상 규명작업을 벌였던 9.11테러 조사위원회는 정보당국이 테러를 감지해 낼 수 있었던 기회가 최소한 10번 있었음에도 그냥 지나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실패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상상력의 실패를 꼽았다.
보고서도 지적했듯이 상상력은 관료사회와 그리 잘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상상력은 개인의 창작과 기업의 성장뿐 아니라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도 절대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물리적 공격 방식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할리웃 영화에나 나옴직한 비행기를 이용한 건물공격이 현실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는 상상력만 가졌어도 9.11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올바른 해석이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분석하고 해석하지 못한다면 쓰레기더미에 불과하다. 정보를 올바로 해석하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정보를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들여다 볼줄 아는 능력이다. 그래서 정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우리가 매일 받아 보는 신문에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담겨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수한 정보를 그냥 지나치지만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사소한 정보 속에 숨겨진 의미와 트렌드를 찾아낸다. 이것이 종종 사업과 투자의 성공을 가른다.
국가 안위와 관련된 정보의 올바른 해석이 지니는 중요성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 있기 전 정보당국에서는 이상 징후와 관련된 정보를 입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단순히 상시적인 위협으로 여기고 지나쳤다는 것이다. ‘설마’ 하다가 당한 전형적인 정보실패 케이스다.
정보해석을 위한 상상력의 출발점은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북한은 잇단 일탈행위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내부적으로 후계체제를 위한 결속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북한의 입장에서 정보를 해석했더라면 이번처럼 무방비로 당하는 일만은 막았을 것이다. 정보책임자의 이력과 식견을 보니 과연 그 자리에 적임자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리고 위기를 관리하고 대응하는 정부의 방식도 어딘지 미덥지 않아 보인다.
입체적인 정보해석에 자신이 없다면 한순간도 민감성을 잃지 않는 자세라도 가져야 한다. 알람이 울릴 때마다 대처하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겠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치러야 할 엄청난 대가에 비하면 결코 큰 지출이 아니다.
연간 수십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국방과 정보 분야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은 단 한 번의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국가안보란 모름지기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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