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샌더스는 NFL 사상 가장 위대한 러닝백의 한명이다. 샌더스는 1989년부터 1998년까지 10년간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에서 뛰면서 1만5,269야드 러싱과 99개의 러싱 터치다운을 기록한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전통적으로 추수감사절에 라이온스와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펼치는 ‘터키보울’ 경기를 통해 그의 민첩하고도 힘찬 몸놀림을 보는 것은 풋볼 팬들의 큰 즐거움이었다.
샌더스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간성 때문에 동료선수들과 팬들의 더 큰 사랑을 받았다. 실력이 조금 있다 싶으면 떠벌리고 말썽을 피워대기 일쑤인 요즘의 스타선수들과 달리 그는 항상 겸손했다. 터치다운을 성공시킨 후 주심에게 정중히 공을 건네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1998년 시즌이 끝난 후 30세의 샌더스는 별다른 설명 없이 은퇴를 선언하고 고향 오클라호마로 돌아갔다. 커리어의 전성기에 올라있던 샌더스의 돌연한 은퇴는 NFL과 팬들에게 충격이었다. 그가 몇 년만 더 뛰었더라면 누구도 깰 수 없는 불멸의 대기록들을 세웠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구차하게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뛰기만 하면 거액의 연봉이 보장되는 데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고향에서 비즈니스와 신앙에 전념하면서 가족과 조용히 살고 있는 샌더스는 정상에서 은퇴한데 대한 회한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인생에는 풋볼이 안겨주는 부와 명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그의 원칙이 그대로 드러난다. 너무 일찍 그라운드를 떠났지만 바로 그런 아쉬움 때문에 그는 실력과 인간성이 뛰어났던 위대한 선수로 팬들의 기억에 더 깊이 각인될 수 있었다.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언제 현역무대를 떠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한창일 때는 한창이기 때문에, 또 부진할 때는 명예회복에 대한 미련 때문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기 일쑤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두 번이나 은퇴를 번복하고 코트로 돌아왔다. 나이가 들었지만 조던은 여전히 다른 선수들보다는 뛰어났다. 하지만 예전의 조던은 아니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3년을 뛴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쿼터백 브렛 파브는 지금 조던과 같은 후회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은퇴 발표와 번복을 밥 먹듯 해 NFL의 ‘양치기 소년’이 돼 버린 파브는 올 시즌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팀은 3승6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이고 9경기에서 고작 10개 터치다운에 인터셉션은 16개나 던져 스스로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
파브는 그린베이 패커스에서 16년간 활약하다 2008년 3월 눈물 속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가 그린베이에서 세운 각종 기록들만으로도 사상 최고의 쿼터백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조금만 더”의 유혹에 빠져 계속 욕심을 부렸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 같던 그는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금년 나이 41세인 파브에게 1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는 20대의 그것보다 훨씬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는 수퍼보울이 눈앞이라는 착각에 빠져 무리수를 둔 것이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구겨질 대로 구겨진 이미지가 더 문제다. 2008년 은퇴 번복 후 뛰었던 뉴욕 제츠 시절의 성추문 의혹이 불거지면서 NFL의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파브는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수차 밝혔지만 팬들의 절반 이상은 “또 다시 말을 바꿀 것”이라며 믿지 않는 분위기다. 성추문의 화살을 비켜가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정도면 아주 심각한 신뢰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3년 전 깨끗이 은퇴했더라면 당하지 않아도 됐을 수모다. 그는 그때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었다. 뜨거운 열정으로 그라운드를 누벼온 파브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열정이 아니라 차가운 판단이다.
파브의 과욕은 내년 진로를 놓고 고민 중인 박찬호 선수에게도 교훈이 될 수 있다. 박찬호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이라는 대기록을 성취했다. 조금만 더 뛰면 몇 개의 사소한 기록들을 갈아 치울 수 있겠지만 별 의미는 없다. 선수생활의 마지막은 고국 팬들을 위해 쏟겠다고 했던 약속이 아직 유효하다면 다리에 힘이 많이 남아 있을 때 마운드에 올라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예의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선수생활에도 마무리가 중요한 법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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