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에 요즘 기분이 날아갈 듯 홀가분한 부부가 있다. 70 전후의 이 부부는 오래도록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슴에 안고 있던 ‘숙제’를 드디어 내려놓았다. 39살의 막내아들이 얼마 전 약혼을 한 것이다. 내년 여름 전에 식을 올리면 아들은 마흔을 넘기지 않고 가정을 이루게 된다.
연말이 가까워오면서 마음이 써늘한 사람들이 있다. 마음의 풍경이 서머타임 끝난 요즘 저녁처럼 어둑어둑하고 춥다. “이번에는 해를 넘기지 말아야지!" 하고 기대를 했는데, 누군지 모를 평생 반려자가 아직도 인생의 지평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노처녀 노총각들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당사자 보다 더 속을 끓이며 걱정이 태산인 부모들이 있다. 집집마다 자녀결혼이 부모들의 큰 ‘숙제’가 되고 있다. 학교 졸업하고 직장 잡으면 으레 하는 것인 줄 알았던 결혼이 갈수록 어려운 ‘과업’이 되고 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딸이, 마흔이 코앞인 아들이 결혼을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 부모들은 애가 탄다. 결혼을 마냥 미루는 것이 젊은 세대의 한 추세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25~34세 연령층 중 미혼자가 기혼자보다 많아졌다. 1960년대 중반 이 연령층의 결혼률은 80%를 넘었다. 이어 70년대부터 결혼하는 비율이 점점 낮아지더니 2009년을 기해 ‘미혼’ 인구가 ‘결혼’ 인구를 넘어서는 대역전이 일어났다. 인구조회국(PRB)이 2009년과 2010년 관련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이다.
결혼 적령기인 이 연령층의 결혼 기피현상은 지난 10년 사이 특히 가속도가 붙었다. 2000년 55%였던 결혼률은 2009년 45%로 무려 10% 포인트가 하락했고, 그 사이 미혼 비율은 34%에서 46%로 뛰어올랐다. 30대 중반까지는 결혼하는 것 보다 안하는 것이 요즘 대세가 되었다.
비슷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20대 결혼’ 풍습은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상대적으로 결혼 연령이 낮은 여성을 기준으로 해도 2009년 말 현재 25~29세 연령층 중 결혼한 사람은 10명 중 3명에 불과하다. 대상을 34세까지의 여성으로 넓히면 결혼·미혼은 대략 반반이다.
남녀 모두 결혼에 두는 비중이 줄었지만 특히 여성들의 관심과 목표가 바뀐 것이 주된 원인이다. ‘참한 신붓감’보다는 ‘능력 있는 사회인’으로 역량을 발휘하며 살고 싶어 한다. 결혼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며 사는 ‘화려한 싱글’, 고소득 전문직의 ‘골드 미스’들이다. 똑똑하고 재능 있는 이들에게 결혼은 ‘선택’일 뿐 나이 때문에 해야 하는 ‘당위’가 아니다. 그들은 싱글로서 당당하다.
그런데 이들이 30대 중반쯤 되어 “이제 결혼을 해볼까?"하면 문제가 생긴다. 남자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걸맞을 신랑감을 찾기가 어렵다. 아들 딸 구별 않고 자녀들을 잘 길러낸 것을 자랑으로 삼는 한인사회의 많은 부모들이 뒤늦게 부딪치는 고민이다.
혼기를 놓쳐도 아들은 걱정이 덜하다. 막내아들이 최근 약혼을 한 지인도 “아들이 결혼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금방 배필을 만나더라. 그동안 괜히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대학 교수가 된 그 청년은 너무 연구에만 몰두해서 부모를 걱정시켰다. “결혼 먼저 하라"고 야단도 치고 잔소리도 했지만 아들은 꿈쩍도 하지 않더라고 했다. “이제 목표를 이뤘다" 생각이 들자 그때서야 신붓감을 찾더니 어렵지 않게 약혼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30대 후반의 교수가 여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회는 남녀평등으로 바뀌었지만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이다. 학력, 지위, 소득 등 조건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나을 때 서로가 편안해 한다. 친구의 아들에게 변호사인 여성을 신붓감으로 소개했던 한 여성이 말했다. 청년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신랑감 부모는 신붓감을 마음에 들어 하더군요. 그런데 그 청년이 꺼려요. 자기보다 똑똑한 여자는 부담스럽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이가 30대 중반쯤 되면 미혼 남녀 중 “괜찮은 여자는 많은데 남자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자녀 혼사로 속 끓이는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후회가 있다. 자녀를 너무 보수적으로 키운 것이다. “연애는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공부만 해라" “아무나 사귀면 안 된다"며 못을 박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 것이 결혼이다. 꽃 피우기 좋은 나이, 열매 맺기 좋은 나이가 있다. 그 시기가 지나면 연애도 결혼도 쉽지가 않다. 매사에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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