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가 끝나고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한풀 꺾여 침통하고 공화당 지도부는 기세가 등등하다. 의료보험 개혁 등 오바마 정부가 지난 2년간 성사시킨 정책들이 잘못 되었다며 다시 바꾸겠다고 으름장이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은 무엇인가. 상대 정당이 통치에 부적격이란 점을 증명하려 애쓰는 것이라고 20세기 미국의 저술가였던 멘켄은 꼬집었다. 그리고 민주·공화 양당 모두 그 일에 성공을 거두는 데 이유는 실제로 부적격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비꼬았다.
“언제나 ‘민주당’ 의원,‘공화당’ 의원은 차고 넘치는데‘미국’ 의원은 너무 부족하다"는 말도 있다. 국민이나 국가 보다 자신들의 이해가 우선인 정치인들에 대한 비아냥이다. 그러니 정치에 너무 기대를 걸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정치는 세상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한국에서 군사독재를 경험한 우리는 정치의 힘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정치는 국민들의 보편적 삶의 환경을 결정한다. 개개인의 삶에 시대적 숙명이라는 큰 배경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그 보편적 환경에서 저마다의 형편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고, 그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종종 정치가 아니다. 욕심 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어떤 특별한 사람들, 그들의 사랑이다.
뉴스가 온통 선거로 메워졌던 이번 주 나는 일종의 휴가처럼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웹사이트를 찾았다. PMAD라는 기획기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PMAD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People Make A Difference)’의 약자. 세계 곳곳에서 헌신하며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주는 이름 없는 주인공들을 매주 한명씩 소개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싱싱하고 가슴 따뜻해서 정신적 정화의 효과가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인도의 한 소년이 있다. 웨스트 벵갈의 가난한 마을에 사는 바바르 알리라는 소년이다. 17살인 그는 집 뒷마당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공부를 가르친 지 8년이 된다. 그가 이름붙인 기쁨교육 학교에는 매일 오후 수백명의 아이들이 모인다. 때가 꼬질꼬질한 옷에 신발도 못 신은 아이들이 뙤약볕에 비닐봉지 깔고 앉아 공부를 한다. 선생님은 10대 청소년들, 바바르는 교장선생님이다.
인도에서도 초중등 교육은 무료이다. 하지만 벵갈의 하층민들에게 무료교육은 의미가 없다. 학교 교복이며 교재비, 교통비를 감당할 형편이 안 되고 무엇보다 아이들도 일을 돕지 않으면 가족이 입에 풀칠을 할 수가 없다. 문맹률이 70%를 육박하는 이유이다.
바바르는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가던 중 동네 친구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소를 끌고 들판으로 가거나 가축 먹일 풀을 베는 것을 보았다. 그때가 9살 때였다. 그날 방과 후 그는 친구들을 불러 글 읽는 법을 가르쳤다. 그 몇 시간이 동네 아이들에게는 꿀맛 같은 배움의 기회였다.
몇 명에서 몇 십명, 다시 몇 백명으로 학생이 불어나고, 뒷마당 학교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자라선생님으로 봉사하고 있다. 까막눈으로 평생을 살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제대로 된 일자리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운명이 바뀐 것이다. 바바르는 그들에게 천사나 다름없다.
호주의 시드니에는 실제로 ‘천사’라고 불리는 할아버지가 있다. 돈 리치라는 80대 노인은 ‘갭의 천사’로 불린다. 40년 전 그는 시드니 항 부근 경치 좋은 곳에 집을 샀다. 거실에서 바라보면 갭이라는 절벽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그 아름다운 절벽이 자살 명소라는 사실을 그는 이사 오자마자 알게 되었다.
절망감이나 우울증, 혹은 정신이상으로 매년 50명 정도가 여기서 투신자살을 한다. 그가 없었다면 아마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지난 수십년 그는 틈만 나면 절벽을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너무 오래 머문다 싶으면 절벽으로 나간다. 그리고는 “우리 집에 가서 차나 한잔 하자"고 청한다. 그렇게 해서 자살을 포기한 사람이 수백 명에 달한다.
빈민가 우범지역 아이들에게 무용을 가르쳐 희망을 심어주는 콜롬비아의 무용가, 가로수가 부족한 샌프란시스코에서 30년째 나무를 심는 전직 변호사, 태평양 한가운데의 산더미 같은 플래스틱 쓰레기 치우는 일에 인생을 건 캘리포니아의 여성 등 세상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나서서 기쁨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있어 사람들의 삶이 바뀌고 그래서 세상이 바뀐다. 정치 이론도 구호도 아니다. 이웃의 삶에 직접 개입하는 직접성이 힘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