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계층에 따른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을 조사해 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난다. 경제적으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여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인 정권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지나치게 대변한다고 해서 ‘강부자 정권’이라는 비판과 지탄을 받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정지지도 조사를 보면 저소득층이 아주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물론 이들은 지난 대선에서도 MB를 찍었던 사람들이다.
가장 적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투표에서 가장 많이 가진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이런 역설적 현상을 계급배반 투표라고 한다. 이에 대해 “불안한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 수많은 한국의 저소득층 자영업자들이 보수진영의 성장 모토에 쉽게 현혹되기 때문”이라는 등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분석들은 부분적으로만 타당할 뿐 계급배반 투표를 두루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보수정당에 투표하는지를 오래 연구해 온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이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보수진영이 장악하고 있는 프레임에서 찾는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의미한다. 우리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즉 ‘진실’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항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투표하지는 않는다. 가치관과 인식에 따라 표를 던지는 경우가 더 많다. 보수진영은 이런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래서 유권자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칠만한 프레임을 선점하고 만들어 내는데 돈과 두뇌를 쏟아왔다.
정당성을 결여한 이라크 전쟁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한때 전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의로운 행위로 둔갑할 수 있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MB 정권 아래서 어느 때보다 소득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지지율이 상당히 높은 것은 ‘친 서민’이라는 프레임이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진보는 “보수에게는 돈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념이 있다”고 자위해 왔다. 하지만 돈을 가진 보수가 프레임 경쟁에서 앞서 가면서 지금은 보수가 돈뿐 아니라 이념까지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선거에서 보수가 승리하고 진보는 패배하게 된다고 레이코프는 지적한다.
중간선거에서 예상대로 공화당이 승리를 거뒀다. 경제상황이 나쁘고 현직 대통령의 지지도가 그저 그럴 경우 ‘집권당 필배’라는 공식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약진을 할 수 있었던 데에도 보수의 프레임 전략이 한 몫 했다.
사실 현재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범은 공화당 정권이다. 경기부양책을 통해 죽어가던 경제에 숨을 다시 불어 넣은 것은 민주당이다. 오바마의 경기부양이 경제가 대공황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는데 경제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런데도 공화당은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큰 정부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전략으로 선거를 치렀다. 물에 빠져 죽어가던 사람을 인공호흡으로 살려놨더니 입술을 건드렸다며 성희롱 주장을 하고 나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이 먹히는 것이 선거판이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보수는 이런 생리를 잘 꿰뚫고 있다.
오바마에게는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소수당이었을 때도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던 공화당이 여소야대 상황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오바마 재선을 막는 것이 목표라고 공공연히 밝혀 온 보수진영이니 그가 잘 되는 것은 절대 보려 들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정치 환경에서 오바마는 타협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재선 욕심 때문에 어설픈 타협을 반복한다면 핵심적인 지지 세력마저 떠나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어줍지 않게 타협하기보다는 진보의 가치를 보다 선명히 하는 게 현명한 전략이다. 어차피 2년 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으로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프레임을 고민하는 것, 이것이 진보와 오바마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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